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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마케팅’에 울고 웃는 기업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제 충격이 커지는 와중에도 먹히는 상품은 먹히기 마련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마케팅 역량이다. 언택트(비대면) 기술 활용은 기본 중 기본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상품들은 언택트 기반 위에 ‘밈(meme)’ 문화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농심은 최근 ‘새우깡’ ‘양파깡’ ‘감자깡’ ‘고구마깡’ 등 과자 4종이 7월에만 100억원 넘게 판매됐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의 한 달 합계 매출이 100억원을 넘긴 건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월평균 판매액 71억원보다 40% 이상 높다.
‘새우깡’은 1971년, ‘감자깡’은 1972년, ‘양파깡’은 1973년 출시됐다. 50년 가까이 된 제품이 갑작스레 폭발적으로 팔린 이유가 바로 가수 비의 댄스곡 《깡》을 소재로 한 밈 현상이었다.
그리스어 모방(mimeme)과 영어 유전자(gene)를 합한 단어 밈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했다. 도킨스는 생물학적 특징이 유전자를 통해 이어지듯 문화도 어떤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는데, 그게 바로 밈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밈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나 콘텐츠를 가리킨다.
한국에서 밈은 하위문화로 소비되다 올해 5월 《깡》을 통해 급속히 대중화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가 직접 “《깡》이 밈이 됐다”고 언급하면서부터다. 방송 이후 비호감이었던 《깡》과 비의 퍼포먼스가 순식간에 호감으로 바뀌고, 밈은 누구나 아는 유행어가 됐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배우 김영철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했던 ‘4딸라’ 대사, 배우 김응수가 영화 《타짜》에서 분한 곽철용 캐릭터, 가수 양준일의 ‘역주행’ 인기 등도 인터넷 밈 현상이 신드롬으로 발전한 사례들”이라며 “지나간 콘텐츠라도 언제든 대중이 밈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때 당사자가 준비만 돼 있다면 트렌드의 주인공으로 조명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은 이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깡》을 패러디한 사진을 올렸다. 비가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 입술을 깨무는 모습 등을 표현했다. 비의 허락도 없이 패러디한 데 대해 팬들이 항의하자 롯데칠성 측은 “‘그분’을 모시기 어려웠다” “시무20조(네티즌들이 비에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행동 20가지)를 위반한 것은 사과한다”는 등 장난스레 넘어가려 했다. 이는 팬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롯데칠성은 사진을 내리고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CJ제일제당은 7월17일 즉석밥 브랜드 ‘햇반’ 공식 SNS 계정에서 가수 선미의 곡 《보라빛 밤》을 ‘보라빛 밥’으로 패러디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던 밈을 인용한 형식이었다. 이후 네티즌들이 저작권 보호나 모델료에 대한 인식 없이 안일하게 광고를 제작했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CJ제일제당 측은 “해당 콘텐츠 소재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메시지)을 통해 다수 제공받았고, 이를 SNS에 빠르게 반영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판단으로 사전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아이디어 최초 게시자에게 연락해 사례할 수 있도록 하겠다. 가수 선미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별도로 연락하겠다”고 밝혔다.
《깡》 열풍으로 ‘밈’ 대중화
밈으로 ‘대세’가 된 스타는 자연스레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네티즌들이 기업에 ‘밈 마케팅’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해당 스타를 광고모델로 쓸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례도 속출한다. 비의 새우깡 광고, 김응수의 버거킹 광고 등이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추천에 따라 탄생했다. 비를 모델로 한 농심 새우깡 광고는 유튜브에서 한 달여 만에 300만 건 가까운 조회 수를 올렸다. 농심 관계자는 “새우깡을 비롯한 ‘깡’ 스낵들 인지도가 전반적으로 올라간 덕분에 판매도 대폭 늘어났다”면서 “조만간 새우깡 챌린지 공모전 응모작을 활용한 광고를 공개할 예정이니만큼 깡 스낵 열풍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술 발달 속에 밈을 만들어 트렌드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대중 권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하재근 평론가는 전망했다. 밈은 유행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위문화적 속성도 유지하고자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모르는 사람도 꽤 있고, 신문·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에서 소개되지 않아야 밈으로서 생명력이 유지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깡》 역주행과 밈 문화에 대해 다룬 한 언론사 뉴스에는 ‘뉴스에 나오면 밈 사망선고인데’라며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달렸다.대중 심리 못 읽으면 역효과
비슷한 맥락에서 밈을 즐기는 대중의 심리를 제대로 간파해야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다. 농심의 식품업계 경쟁사인 빙그레는 《깡》 열풍 등 행운을 만나지 못한 대신 색다른 방식으로 밈 마케팅에 동참했다. 우선 비의 아내인 배우 김태희를 아이스크림 ‘끌레도르’ 광고모델로 발탁했다. 광고 이미지, 문구 등은 누가 봐도 《깡》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다. 이런데도 빙그레 측은 “김태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끌레도르와 어울린다고 판단해 모델로 기용했다”며 시치미를 뗐다. 《깡》이나 비, 밈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노골적이지 않고 색다른 감성의 마케팅에 호평이 쏟아졌다. 반면에 충분한 분석과 준비도 없이 밈 마케팅에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기업도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5월21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깨수깡 X 깡’ 이벤트를 진행했다. 숙취해소음료 ‘깨수깡’의 구매 인증 사진을 올리면 ‘1일 1깨수깡’ 라벨을 붙인 한정판 제품을 증정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