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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그룹의 태생적 한계가 근본 원인…체계적 관리 시스템 구축 절실

지난 7월 걸그룹 AOA의 멤버였다가 탈퇴한 권민아가 10년 동안 같은 그룹 지민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해 큰 논란이 빚어졌다. 권민아는 자신이 AOA에서 탈퇴한 것이 지민의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이었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었다고 고백하며 왼쪽 손목 상처를 공개해 충격을 안겨줬다.

지민은 당초 권민아의 폭로를 ‘소설’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이후 연달아 폭로 글이 이어지자 지민과 AOA 멤버들은 매니저와 함께 권민아를 찾아가 사과했다.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민이 SNS에 올린 “어제도 울다가 빌다가” 했다는 입장문이 또다시 논란의 불씨를 만들었다. “빌었다”는 표현이 거짓말이라며 권민아가 반박한 것이다. 논란이 다시 커지자 지민은 AOA를 탈퇴하고 연예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모든 게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끝이 아니었다. 권민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병원에 실려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민은 탈퇴했지만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측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던 게 권민아에게는 여전한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던 FNC도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성호 FNC 대표가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면서 사태는 해결됐다. 권민아는 8월11일 자신의 SNS에 한 대표와의 만남으로 그간의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이돌 AOA는 그룹 내 불화와 집단 괴롭힘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며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사저널 박정훈

티아라 사태 이후 8년이 흘렀지만…

날 선 폭로가 이어졌던 7월을 떠올려보면 갑작스레 입장이 바뀌어버린 권민아의 상황이 다소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권민아의 상처가 깊었고, 그로 인해 극도로 불안정해진 그의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이돌그룹의 왕따 폭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브의 전 멤버 신민아가 “그룹 내 왕따로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게 됐다”고 폭로했고, 리미트리스 멤버 윤희석 역시 팀 내 불화를 폭로한 후 팀을 탈퇴했다. 걸그룹 ANS의 멤버 해나는 SNS에 “내가 조용히 죽어버리면” 같은 표현을 써가며 그간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사실을 폭로했다.

사실 아이돌그룹 내에서 벌어지는 불화나 집단 괴롭힘의 문제는 이미 2012년 티아라 사태가 벌어지면서 공론화된 바 있다. 티아라 멤버였던 화영이 다른 멤버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문제는 왕따설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소속사가 화영을 퇴출시키며 커졌다. 대중들에게 이 조치는 마치 왕따 사건이 발생했는데 피해 학생이 강제 전학을 가게 된 것처럼 비춰졌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고 포털에는 ‘티진요(티아라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가 개설됐다.

당시 이 사태는 아이돌그룹 내부에 숨겨져 있던 팀원들 간 갈등의 원인들을 전면에 끌어올렸다. 그때로부터 벌써 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아이돌그룹의 태생적 성격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합숙생활을 하며 함께 활동하는 아이돌그룹의 특징은 그 자체로 많은 갈등의 소지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것이 멤버들 간의 수입이 다른 데서 나오는 불만이다. 아이돌그룹에는 전면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그들은 방송에 출연하고 갖가지 다른 일들까지 하면서 아이돌그룹 전체의 수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수익의 배분을 N분의 1로 하게 되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런 팀원들 간의 차이는 팀의 결속력이 남다르지 않은 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몇몇 팀원에게만 집중되는 노동 강도로 인해 팀 내 갈등을 야기한다.

또 아이돌그룹은 팀 구성 자체가 전략적인 유닛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중간에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인물로 채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적 판단에 의해 팀원들이 탈퇴하고 합류하는 과정에서 기존 팀원들과의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자신들이 노력해 만든 성과들에 누군가 ‘무임승차’했다고 여겨지면 그간 고생했던 팀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불만은 무언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한성호 FNC 대표 ⓒ연합뉴스

K팝 위상에 걸맞은 관리 체계 필요

최근 K팝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글로벌한 팬덤을 갖고 있는 방탄소년단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블랙핑크가 유튜브 구독자 4400만 명으로 세계 4위를 기록하며 에미넴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 10대들에게 K팝이 이미 주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이런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돌그룹 논란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K팝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는 게 아이돌그룹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 그룹이라는 형태가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잡음이나 불만들을 좀 더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절실해 보인다. 아이돌 연습생들을 훈련시키고, 그렇게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낸 후, 이를 SNS 등을 통해 글로벌하게 알리는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관리는 확실히 성과를 낼 정도로 앞서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들의 멘털 관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아이돌그룹의 멘털 관리가 특히 중요한 건 이들을 탄생시키는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독특한 기획사 시스템이 가진 맹점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존재는 데뷔할 때 아이돌(젊은 나이)이라는 특정 나이여야 하는 동시에 연습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바깥 생활을 하게 된다. 친구들은 학교 갈 때 자신은 기획사에 와서 노래, 춤 연습을 해야 한다. 게다가 데뷔가 확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그 절실함에 경쟁도 치열해진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안정한 멘털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놓이는데, 정작 이들을 위한 관리 프로그램은 일천한 상황이다. 대형 기획사에서조차 여러 차례 아이돌그룹의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건 더 열악할 수밖에 없는 중소 기획사들의 사정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K팝이 이제 국가 이미지를 대표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지금, 좀 더 체계적인 구성원들의 멘털 관리는 기획사의 사업적인 관점에서도 필수적인 일로 떠오르고 있다. 어쩌면 성공 그 자체보다 유지·관리가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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