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단체 “의대 증원 등 의료정책 전면 재논의해야”
주요 병원들 수술 연기하고, 외래진료 축소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의료공백 우려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21일 오전 7시를 기해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필수 인력을 포함한 전공의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의료 대란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이날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를 시작으로 22일 3년차 레지던트,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가 순차적으로 파업에 돌입한다. 응급의학과는 연차와 관계없이 이날부터 모두 업무를 중단했다.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은 지난 7일 집단휴진과 14일 대한의사협회의 1차 전국의사총파업 참여에 이어 세 번째다. 대전협은 ▲의대 정원 확충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의료 정책의 전면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이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인턴들의 전공의 시험 거부, 레지던트 4년차들의 전문의 시험 거부, 전체 전공의 사직서 작성 등의 투쟁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협에 이어 의협도 26~28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돌입한다. 의협은 총파업 이후에도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또 전공의 파업시 업무를 대체했던 전임의(펠로)들도 '대한전임의협의회'를 결성하고 24일부터 파업 참여를 선언했다.
의료계 전체가 집단 행동을 이어갈 경우 전국적인 의료 대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장 서울 시내 주요 병원은 이날 예정돼있던 수술을 연기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외래 진료와 입원 등의 예약을 줄여서 받았고, 삼성서울병원은 급하지 않은 외과 수술을 연기했다.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를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의료계는 마취과 전공의 업무 공백으로 수술 건수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마취과 전공의는 수술 중 마취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한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응급 수술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마취과 전공의 부재에 따라 30여개 수술방 운영을 일부 감축하면 수술 역시 30∼40%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병원들은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운영 축소 등 최악의 상황도 가정하고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일부 전공의들이 배치되는데, 전공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선별진료소도 축소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전협은 단체행동 중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후에도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의해 선별진료소 등 방역 인력이 필요한 곳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형철 대전협 대변인은 "정부 관계자들보다 우리가 더 코로나19 환자들에 대한 심각성을 많이 느끼고 있고, 그래서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라며 "지금 코로나19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고, 이것을 잘 극복하고자 총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하루하루 의료진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정책을 만들려면 경제 전문가들이 필요하듯 의료 정책을 만들려면 의료 전문가와 협의해야 한다"며 "정부가 원점에서부터 시작하는 협의를 한다고 하면 파업을 철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에 따라서 나타나게 되는 여러 가지 염려되는 바가 있다"며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담당하고 있는 중증 환자들에 대한 치료의 공백, 또 응급실 운영에 있어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병원들과 함께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조정관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며 "현재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의를 이어갈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