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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더 이상 운동기계 같은 ‘선수학생’ 양산해선 안 돼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한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후배 A씨가 필자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필자: “(아들) 어느 고등학교에 가기로 했어?”

A씨: “감독이 손찌검을 하지 않는 학교를 골랐어요.”

“아니 (심석희 사건이 있었는데도) 아직도 폭행을 한단 말이야?”

“암튼 그래요. 그래서 S고등학교로 가기로 했어요.”

“S고등학교는 그런(폭행) 일이 없단 말야?”

“네, 학부형들은 빠삭하게 다 알아요.”

“그럼 (폭행이 있다는) D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학부형들은 뭐냐?”

“(자식이 맞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운동만 잘할 수 있다면….”

“….”

후배 A씨의 말을 듣고 실정을 알아봤더니 선수생활을 하는 학생에게 폭행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학교가 여전히 적지 않았고, 다른 종목의 경우도 대동소이했다. 무엇보다도 폭행을 한다는 사실을 학부형이 알고도 자식을 보낸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숙현 사건’이 터졌고,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청와대·국회가 나서고 있는 지금도 제2, 제3의 최숙현이 학교나 직장의 합숙소, 전지훈련지, 경기장의 으슥한 곳에서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가해자들에게는 늘 그래 왔듯이 이 또한 어차피 한바탕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오상민
ⓒ일러스트 오상민

심석희 사건 때도 나온 재발 방지 대책 ‘공염불’

지난해 1월,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폭행 사건을 AP·AFP·신화사 등 해외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면서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국위 선양’이라는 명목하에 수십 년간 쌓아온 한국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폭력을 바탕으로 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당시 사건에 직간접 책임이 있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등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부랴부랴 대처 방안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어떤 처방이든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온 재탕·삼탕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고(故) 최숙현 선수 문제도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권에서 나서고 있지만, 체육계 주변에서는 올림픽 메달 등 성적 지상주의와 경쟁만 부추기는 학원 스포츠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료법이 나올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우선 국가대표 관리규정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도자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를 ‘국가대표 지도자는 선수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오는 8월 발족하는 ‘스포츠윤리센터’에 법을 개정해서라도 ‘특별사법경찰권’을 줘서 문제가 생길 경우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학생들처럼 공부하면서 운동하도록 해야

우리나라는 1972년 체육특기자제도 도입 이후, ‘학생선수’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 학업성적은 거의 관계가 없다. 그저 운동만 잘하면 된다. 잘 훈련된 운동기계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대학스포츠협의회(NCAA)가 설정한 요구조건(14개 핵심과목 이수, 일정한 평점, 대학수학능력 표준점수 SAT) 등을 이수해야 대학에 갈 수 있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운동만 잘해서는 대학에 갈 수 없고, 어느 정도 학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일정한 학력을 유지해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대학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며, 어떤 예외도 없다는 교육원칙에 의거하고 있다. 그래야 대학생 선수들이 학교에서 학업성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 학교를 대표하는 운동부원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선수들은 학점(B)을 유지하지 못하면 운동부에서 퇴출된다. 우리나라 역시 이제부터라도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모든 운동선수가 일반학생들처럼 공부하면서 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일반학생’과 운동하는 ‘학생선수’로 나뉜다. 말이 학생선수지 사실 ‘선수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선수학생’이 되면 학교 수업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처음에는 오전 수업만 받고 오후에 운동을 하지만, 수업을 한두 번 빠지다 보면 수업 내용을 따라잡기 어려워 설사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잠만 자게 되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선수학생’에게 수업을 강요하지 않는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잠만 자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초·중·고생과 대학생까지 모든 선수가 학교수업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학력이 갖춰져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성적이 떨어지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감독 등으로부터 폭력·성추행·금품요구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당당히 뿌리치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 외에도 다른 길을 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7월6일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7월6일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창살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태릉선수촌

우리나라는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부터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을 매우 중요한 정부 시책으로 추진해 왔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경기력향상연금과 군대 면제 등 당근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제 스포츠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는 것이다. 1966년 지어진 이후 선수들 사이에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구시대의 유물인 태릉선수촌도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체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마치 수용자처럼 수개월 동안 가둬놓고 훈련시키는 비인간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평소엔 소속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올림픽 등 종합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보름이나 한 달 정도만 합숙훈련을 하도록 한다. 평소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해 모든 국민이 세계 최고의 운동기구나 시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지구촌 가족이 모여 한바탕 스포츠 축제를 벌이는 국제적인 종합스포츠 제전이다. 하지만 과거엔 이런 스포츠 제전이 국력을 과시하는 정치적 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974년부터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에게 시혜적 성격의 포상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경기력향상연금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일시적인 포상금으로 그 선수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대체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병역특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프로선수의 경우 ‘병역면제’를 10억원 정도의 가치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병역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여자선수들에게도 상대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도 경기력향상연금 대신 포상금을 주거나, 병역 면제 대신 은퇴한 후에 입대나 대체복무를 하는 등의 ‘입대 연기 특혜’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만연하고 있는 체육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무엇보다 학원 스포츠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받는 ‘체육 특기자 입학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특히 힘을 얻고 있다. 대학 스포츠계에선 “대학 스포츠 감독이 되는 것은 교도소 울타리 위에 올라서는 것”이란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만큼 대학들이 고등학교 3학년 선수를 스카우트(진학)하는 과정에서 물밑에서 불법자금이 오갈 가능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최숙현, 제2의 심석희 선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대한민국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위 선양’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성적 지상주의를 없애고, 학원에서는 더 이상 운동기계 즉 ‘선수학생’을 양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기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경기장을 떠나서도 건실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학생선수’들을 배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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