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박찬종 변호사는 5선 의원을 지낸 정계 원로다. 대선 출마 경력도 있다. 이에 2월18일 인터뷰 때 정치 원로로서 정치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2020년 4월 총선도 있기 때문이었다. 품격 높고 곰곰이 되새길 만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측은 산산이 부서졌다.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려면 현찰동원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2년 동안 20억원, 하다못해 5억원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이런 구조인데 내가 무슨 코치를 하겠느냐”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돈 없으면 정치하지 말라는 만류나 다름없었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 풍토는 공천 경쟁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틀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 지망생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며 “줄 잘 서고, 매달리고, 돈 가져다주고, 비위 맞추고, 선물 가져다주고, 그러지 않으면 실력자 집에 이틀에 한 번 가든지, 자동차 문이라도 열어주고 닫아주든지…”라고 했다. 50년 가까이 정치권에 몸담은 원로의 푸념이었다. 우리 정치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우리 정치가 미국식으로 선거 후보를 정할 수 있다면 “젊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해 줄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에 매달릴 생각하지 말고 뛰어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느냐. 대학 나와서 아무런 사회 경험이 없어도 뛰어라. 명함 만들어서 ‘4년 뒤 ○○당에서 공천 받아 여러분을 자주 찾아뵙겠습니다’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해라. 두 번 가고, 세 번 가면 어떤 상점에선 ‘또 왔네?’ 그럴 것이고 그러면 ‘네, 또 왔습니다’ 하며 자주 찾아봬라. 장사에 어려운 일은 없는지 물어보고 ‘제가 국회에도 언론에도 알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팸플릿 만들 돈 없으면 가볍게 종이 사서 이름 쓰고 팸플릿으로 만들어라. 팸플릿에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겠다고 쓰고 알리며 다녀라”라고 조언했다. “이런 정치가 풍토로 자리 잡아야 정상적인 나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