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얘기지만,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지난해의 경우 “더워도 너무 덥다” “폭염 그 이상이다”와 같은 말이 나왔다. 지난해 8월1일 강원도 홍천의 낮 최고기온은 41도, 서울은 39.6도를 기록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전국 및 서울의 여름 기온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서울과 홍천뿐만이 아니다. 전국 많은 지역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아프리카 날씨가 무색할 정도였다. 올해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지난해 추세가 이어지면 한반도의 여름이 5~9월로 장기화하고 폭염 현상이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즉 폭염이라는 재난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것이다.
‘극한 날씨’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있다. 바로 ‘전력 수급’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전력 수요도 따라서 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더위가 한반도를 덮치자 전력 공급 예비율은 10%를 하회했다. 실시간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7월24일에는 전력 예비율이 한때 7%대까지 떨어지며 전력 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양수발전, 비상시 ‘5분 대기조’ 역할 톡톡
만약 올해 여름이 지난해보다 더 길고 날씨는 더 덥다면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을까. 전력 당국은 이 질문에서 ‘만약’을 지우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전문가들은 ‘전력 믹스(mix)’와 ‘에너지 믹스’를 제시한다. 어느 하나의 정답보다는 ‘만에 하나’라는 불안을 해소할 다양한 해법을 섞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받는 대안이 있다. 바로 양수발전이다.
양수발전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다. 양수(揚水)란 ‘물을 위로 끌어올린다’는 의미다. 양수발전소는 밤에 남는 전기로 물을 위 저수지로 끌어올렸다가 낮 시간에 이 물을 아래 저수지로 내려보내며 수력발전을 한다. 즉 전기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바꿔 저장하는 ‘거대한 배터리’인 셈이다. 국내에는 권역별로 7개소, 16기가 운영 중이며 국내 발전설비용량의 약 4%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양수발전소는 스스로 ‘최초의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발전소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 최초의 전기를 아주 빨리 만들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양수발전소는 발전기가 기동되는 데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물을 끓이거나 용광로를 데워야 하는 다른 발전소는 최고 출력에 도달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복합화력발전은 30분, 석탄화력발전은 5시간가량, 원전은 30시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양수발전소는 ‘블랙아웃(대정전)’을 막을 ‘5분 대기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실제 양수발전소는 블랙아웃 발생 시 정지된 각 발전소에 첫 기동 전력을 공급한다. 2011년 벌어졌던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 때도 양수발전소는 위기 극복의 선봉에서 활약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력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 양수발전은 매 순간 전력 수요량에 공급량을 일치시켜 왔다. 사람으로 치면 맥박을 조절해 주는 역할이다. 전문가들은 양수발전소가 1980년부터 30년 넘게 국가 전력 비상사태의 최후방어선 역할을 해 왔다고 입을 모은다. 블랙아웃을 막을 비상전원으로서의 임무를 양수발전소가 해 온 것이다.
전력 당국은 ‘탈원전·탈석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기조에 따라 양수발전소를 보다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선언했는데,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양수발전이 이를 보완할 대체 재생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재생에너지 증가로 인해 양수발전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다. 세계적으로 양수발전소는 약 150기가 운영되고 있는데 미국은 양수발전소를 2029년까지 40GW로 확대해 2014년 21GW 대비 90% 증가시킬 계획이다. 중국은 양수발전을 2029년까지 638% 확대할 방침이다. 이 외에도 독일 74%, 스페인 22%, 이탈리아 8%, 일본은 12%의 설비를 증가시키는 등 세계 각국이 양수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中, 양수발전 용량 2029년까지 638% 확대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춰 정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양수발전소 2GW 추가 건설 계획을 확정했으며, 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양수발전소 부지 유치 공모를 추진 중이다. 현재 한수원은 사전기술검토를 거친 예비지점 소재 8개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최종 후보지 3곳을 선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유치 공모는 2월 이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한수원은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 후보 부지 선정에서 주민 수용성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어 사업은 지자체 자율 유치 공모 방식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한수원은 건설 후보 부지 선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야별 사외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위원회)를 발족시켜 접수된 후보지를 위원회가 평가해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한수원은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만 수행한다.
한수원은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이 재정자립도가 낮고 인구문제로 고민이 많은 지자체에 새로운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전소 유치 지자체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법에 의해 지원받을 수 있다. 한수원에 따르면, 600MW 발전소를 기준으로 7년의 건설기간 동안 약 190억원의 지원금이 해당 지역에 지원된다고 설명한다. 60년 이상의 운영기간 동안 약 360억원의 지원금도 지원된다.
세수 효과도 있다. 전국 7개 양수발전소의 최근 7년간(2011~17) 지방세 납부 누계실적은, 발전소 규모와 전력생산량 차이에 따라 최소 약 35억원에서 최대 약 133억원이다. 한수원은 양수발전소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지방세 등에 따라 세수가 증가해 지역의 성장동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규 양수발전소는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관광지 역할도 할 수 있다. 경북 청송 양수발전소의 경우 새해맞이 행사가 이뤄지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연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은 지자체 유치 공모가 진행되는 동안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회와 간담회, 견학 및 홍보물 배포 등을 통해 양수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홍보와 소통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