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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한투·신한금투 등 IB 출신 선임…“IB 부문 중요도 커진 데 따른 영향”

증권업계에서 투자은행(IB)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은 앞서 IB 출신 인사를 수장으로 내세웠고,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도 IB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최근 신임대표로 내정했다. 자기자본 기준 상위 증권사 대표 대부분이 IB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증권사 내 IB 부문의 중요도가 높아진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증권사의 수익 창출원이었던 브로커리지(Brokerage·위탁중개) 부문은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장이 정체된 모습을 보여왔다. 게다가 브로커리지 관련 사업은 증권시장 부침에 따라 실적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IB 부문은 여전히 성장 여력이 남아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인적 역량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 자연스레 IB 출신 인사들이 증권업계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맨 오른쪽)은 기업공개·유상증자·회사채 발행주관 등 IB 전 분야에서 실적을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 연합뉴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맨 오른쪽)은 기업공개·유상증자·회사채 발행주관 등 IB 전 분야에서 실적을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 연합뉴스

브로커리지 부문 경쟁 갈수록 심화 

일례로 신한금융지주는 12월21일 임시 이사회와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열고 신한금융투자의 신임대표로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GMS(투자운용사업그룹) 부사장을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신한금융투자 이사회를 통해 자격요건이나 적합성 여부 등을 검증받은 후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김 내정자는 증권업계에서 ‘채권통’으로 이름을 날린 IB 전문가다. 그는 1989년 동양증권에 입사해 채권운용팀장, 금융상품운용팀장, IB본부장, FICC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신한금융투자로 넘어와 자산운용 부서인 S&T(sales & trading·판매 및 운용), GMS(Global Markets & Securities·고유자산운용) 부문을 맡기도 했지만 그의 경력 대부분은 IB 부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비슷한 시기, KB증권도 IB 출신 전문가를 신임대표 자리에 앉혔다. KB금융지주는 12월19일 대표추천위원회를 열고 KB증권 각자 대표에 박정림 현 국민은행 WM(Wealth Management·자산관리)그룹 부행장 겸 KB증권 WM부문 부사장과 김성현 KB증권 현 IB총괄 부사장을 선임했다. 당시 박 부행장이 증권사 최초 여성 CEO가 되면서 부각됐지만, 이에 못지않게 김 부사장도 IB 출신 대표로 언론의 큰 조명을 받았다. 

김 내정자는 IB 부문에서 외길을 걸었다. 그는 대신증권 기업금융팀장, 한누리투자증권 기업금융팀장, 옛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장, KB증권 IB총괄을 역임했다. 그만큼 IB 부문 베테랑으로 꼽힌다. KB증권은 핵심 사업부문으로 꼽히는 IB 부문을 김 내정자에게 맡길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IB 부문 출신 인사를 대표 자리에 앉혔다. 한국투자증권은 11월23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정일문 부사장을 선임했다. 지난 12년간 회사를 이끌며 ‘최장수 CEO’ 타이틀을 갖고 있던 유상호 사장의 바통을 받은 것이다. 정 내정자는 한신증권에 입사해 동원증권, 한국투자증권으로 사명이 바뀌는 동안 한 회사에서 30년 동안 근무했다. 이 가운데 28년을 IB 부문에서 일하면서 역량을 쌓았다. 삼성카드, 삼성생명 등의 기업공개(IPO)를 주관해 IPO 시장에서 이름을 높인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다른 주요 증권사들은 이미 IB 출신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상태다. 미래에셋대우는 옛 대우증권과의 통합법인이 출범한 2016년 말 이후 현재까지 최현만·조웅기 각자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 조웅기 대표는 옛 미래에셋증권의 IB 법인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사로 통합 이후 IB 부문을 총괄했다. 지난 11월에는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높아지는 IB 중요성 대변하는 자리가 CEO”

NH투자증권 역시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해 IB 전문가를 대표로 선임했다. 2018년부터 NH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는 정영채 사장은 대우증권 IB담당 임원, 옛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를 맡으면서 IB부문의 전문성을 쌓았다. 특히 그는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 시절, 기업공개·유상증자·회사채 발행주관 등 IB 전 분야에서 NH투자증권을 상위권에 올려놓으면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IB 부문 출신 인사를 수장으로 선임한 이유는 IB 부문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거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 브로커리지 중심이었다. 하지만 증권사 간 브로커리지 수수료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브로커리지는 증시가 부진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수익성이 낮아지는 특징도 있다. IB 역시 경쟁이 심한 부문이긴 하지만, 인적 역량에 따라 시장 파이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여기에 더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도 IB 역량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금융 당국에서도 국내 증권사 성장 방향의 중심에 IB를 놓고 있다. 특히 자기자본이 큰 대형사를 중심으로 IB 역량을 키우도록 유도한다. 지난 정권부터 시작된 ‘초대형IB’ 정책은 자기자본을 3조원, 4조원, 8조원 이상으로 구분해 자본 규모에 맞춰 차별화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현재 발행어음 인가를 받아 사업에 나서고 있는데, 초대형IB에 허용된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이미 증권사 실적에서 IB 부문의 수익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55곳은 IB 관련 수수료 수익으로 올해 3분기 누적 1조2299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체 수수료 수익(7조4884억원)에서 16.4%를 차지한다. 2015년 같은 기간에는 IB 관련 수수료 수익 비중이 14.2%였다. 특히 대형사의 경우 최근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IB 수익 비중이 20~30% 수준으로 더욱 높아진 상태다. 

주요 증권사들이 IB 전문가로 CEO를 선임하면서 업계의 관심은 향후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표 선정뿐 아니라 임원 구성이나 조직 구성 때도 IB에 힘을 싣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IB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는 이들이 향후 시장을 어떻게 재편할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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