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사’ 이재명 vs ‘국정조사’ 박원순 vs ‘드루킹 재판’ 김경수
흔히 정치권에선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한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더 높은 곳을 쳐다볼수록,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견제를 받는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검증대에 오르기 마련이다. 그 검증대를 얼마나 무난하게, 치명타를 입지 않고 통과하느냐에 따라 그의 ‘급수’가 달라진다. 그것이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주자들이 연이어 폭풍 공세를 받으며 정치 시험대에 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주 논란으로 코너에 몰린 데 이어 친형 강제입원 사건까지 조명받으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 국정조사가 ‘박원순 청문회’에 버금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드루킹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는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다. 모두 ‘온실 속 화초’처럼 당내 권력투쟁을 거친 적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공통으로 언급한 두 글자의 단어가 있다. 바로 ‘진실’이다.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사건과 친형 강제입원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 또한 “야당은 진실이 아닌 저 박원순을 겨냥한 정치공세로 일관했다”고 반박했다. 김 지사는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 사람이 말한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세 사람의 정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주류가 기획적으로 비문계 대권 주자들을 제거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비서 성폭행 혐의로 사실상 정치 생명을 잃었다. 여기에 이 지사, 박 시장 등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대권 레이스가 시작됐으면 몰라도 현재로선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인데 이를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해당(害黨)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변방 장수’ 이재명, 중앙무대 데뷔 가능할까
이 지사는 지난해 경기지사에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권과 한걸음 가까워졌다. 2016년 촛불집회의 ‘라이징 스타’였던 이 지사는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위협하는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확실한 지지층과 반대파를 동시에 양산했다는 점이다. 대선 경선 당시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에 대해 아들 특혜 의혹 등을 제기하며 거세게 밀어붙인 것은 민주당 최대주주인 친문 지지층의 적대감으로 이어졌다. 경기지사 경선에선 친문계 핵심 인사인 전해철 의원과 이전투구를 벌였다.
경찰은 11월17일 이 지사의 아내 김혜경씨를 ‘혜경궁 김씨’로 불리는 트위터 계정(@08_hkkim)의 소유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은 이 지사를 둘러싼 다른 의혹들과 파급력을 달리한다. 해당 트위터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했다. 이는 친노계에서 친문계로 이어져 온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역린(逆鱗)’과도 같았다. 게다가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취업 특혜 논란 등을 주장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혜경궁 김씨 사건은 잠복해 있던 여러 리스크 중 하나다. 다른 말로 하면, 아직 크게 불거지지 않은 다른 이슈들 역시 ‘혜경궁 김씨’ 사건과 성남 조직폭력배 연루설,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의혹을 뒤따라갈 여지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11월24일 13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자정이 다 될 무렵 검찰청사를 나온 이 지사는 “정당한 행정이 정치에 의해 왜곡된 것이 안타깝다”며 “형님은 정신질환이 더 악화돼서 형수와 조카가 강제 입원시킨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 지사는 친형 재선씨 강제입원과 관련해 2012년 보건소장 등 시 소속 공무원들에게 의무에 없는 친형에 대한 강제입원을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상 청문회’ 앞둔 박원순 운명은
박원순 시장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수용했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앞두고 더이상 국회 공전을 방치할 수 없었던 여당은 야권이 주장하는 ‘공공부문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국정조사가 서울교통공사를 타깃으로 삼고 있는 만큼 사실상 ‘박원순 서울시장 청문회’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서울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 의혹의 책임은 박원순에 있다며 총공세를 펼친 자유한국당은 국정조사를 사실상 ‘박원순 청문회’로 끌고 가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여당 대권 주자인 박 시장을 증인으로 불러놓고 파상공세를 펼칠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산적해 있는 민생법안, 내년도 예산안을 볼모로 펼친 부당한 정치공세”라며 “강원랜드 권력형 비리에는 눈감으면서 마치 (나한테) 권력형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민생을 인질로 삼은 야당의 정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박 시장은 점차 운신의 폭을 넓히며 몸값을 불리고 있다. 11월17일 정부 노동정책을 규탄하는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여권 주류와 행보를 달리했다. ‘자기 정치를 한다’는 프레임이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제기됐다. 11월 22~24일엔 대전과 부산, 경남 창녕 등을 돌며 일정을 소화했다. 본인은 서울시장으로서 예정된 일정들을 소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만, ‘조기 대권 등판’을 한 것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특검 넘은 김경수, 법원의 최종 판단은
드루킹 댓글 조작 연루 의혹으로 정치 위기에 몰렸던 김경수 지사는 다소 숨을 고르고 있다. 지방선거 출마 선언 직전 터져나온 드루킹 연루 의혹은 지리멸렬한 진실공방을 가져갔고, 경남지사 선거에도 막대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경남 도민들의 최종 선택은 김 지사였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특검이 도입됐다. 특검팀은 김 지사를 수차례 조사한 데 이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법원의 판단을 받고 또 다시 고비를 넘겼다. 결국 드루킹 특검은 역대 13번의 특검 중 유일하게 수사 연장 신청을 포기해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아직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재판에서 지리멸렬한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 지사는 10월29일 1차 공판에 출석하면서 “새로운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지금까지 조사 과정처럼 남은 법적 절차를 충실하고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재판을 통해 모든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11월16일 2차 공판을 마친 김 지사는 “재판이 진행되고 증인 신문이 진행될수록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