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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김영철’ 리선권의 냉면 발언, 北 협상전략일 뿐…분노·안갯속 정세만 남아

북한의 바람대로 된 것일 수도 있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이 넘어가냐' 발언설(說)이 일으킨 파장 얘기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월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리 위원장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온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며 핀잔을 줬다고 전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북측에서는 남북 관계가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확인하듯 말하면서 남한 전체가 술렁였다. '심각한 결례를 범한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우리가 강하게 반발하면 리 위원장이 교체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 터져나왔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일행이 지난 8월25일 오후 서울의 숙소에서 밖으로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北, '냉면 발언' 리선권에 책임 물을 여지 적어 

 

북한이 리선권 위원장 발언에 대해 사과할 여지는 적어 보인다. 또 리 위원장 교체 가능성은 북한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분석이 많다. 그가 북한 정권의 신임을 받는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남북 관계를 다룬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풀이 그렇게 넓지 않다. 리 위원장은 군 출신으로 과거 판문점대표부에 주로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리 위원장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남북 간 회담 및 실무접촉에 참여했다. 이 시기 그가 몸담은 회담은 대부분 군사 분야에 관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리 위원장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라인의 대남 강경파로 분류됐다. 그는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남측의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2월 제39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가, 다시 천안함 사건은 모략극이라고 비난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김정은 집권과 함께 국방위원회 정책국 부국장에 올랐고, 2014년 10월엔 국장으로 승진했다.
  
리 위원장의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2016년 6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조평통이 통전부 외곽 기구에서 국가 기구로 격상됐는데, 이때 그는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조평통위원장은 과거부터 홍명희, 이극로, 김일, 허담 등 북한의 거물급 실세들이 차지해 왔던 자리였다. 199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허담이 사망한 뒤론 오랫동안 공석으로 있었다. 한때 김용순 부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후에 다시 부위원장으로 호명되는 등 정확하지 않다. 이러한 조평통위원장에 리선권이 '확실히' 임명됐다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다는 증거다. 북한 실세 중 실세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평가된다. 

 

리 위원장은 인민군 소장~중장, 나이는 50대 후반~60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된다. 총리 혹은 부총리급으로 평가됐던 과거 대비 조평통위원장 직책의 격이 낮아진 것으로 보이나, 현실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30대인 김 위원장은 앞으로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할 엘리트들에게 힘을 싣고 있다. 리 위원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대표적이다.   

 

 

現 최고 실세 김영철의 오른팔…차기 주자로 부각  

 

더군다나 리선권 위원장은 현재 북한 2인자인 김영철 부위원장(73세)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손꼽힌다. 김 부위원장은 북한의 대남·대미 전략 모두에서 최선봉에 서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군 출신에 호방하고 직선적인 성품까지 비슷하다.

 

김 부위원장은 앞서 미국을 상대로 강경 발언을 이어가며 북·미 관계를 뒤흔들었다. 급기야 그가 미국에 보낸 '비밀 편지'는 8월2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소시켰다. 로이터는 미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김 부위원장 비밀 편지의 어투가 '기꺼이 무언가를 줄 생각이 없다면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후에도 북한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김 부위원장을 문책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미국이 대북 메시지를 쏟아내며 다급한 마음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김 부위원장 태도는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략으로 읽혔다. 단독 행동으로 보는 이는 적다. 뒤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와 경제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며 군부 강경파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영철 부위원장을 앞에 두고 "저 사람 때문에 안 되는 일이 많았다"고 발언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김 부위원장이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배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핵심그룹이 김영철 부위원장을 앞세우는 건 지금 북한에 그런 강경한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데 김 부위원장을 요긴하게 써먹다가, 혹시 부작용이나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강경파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8월31일자  기사 참조)

 

 

출구 없는 분노·안갯속 한반도 정세만 남아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리선권 위원장의 행동 역시 김영철 부위원장의 전례를 밟은 것이라 봤다. 정 소장은 "북한이 김영철, 리선권 등 군부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군사·전략적 지위를 과시하며 상대방을 압도한 뒤 협상을 주도하기 용이해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리 위원장이 남한 대기업 총수들이나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을 상부로부터 요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북한 전문가는 "최선희 부상도 강경 발언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취소시킨 바 있지만, 이후 잘만 나가고 있지 않느냐"며 "북한 정권에서 관료가 결코 자기 마음대로 얘기할 수 없다. 다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 한 명밖에 없다"며 "다만 (강경 발언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더라도 세부적인 단어 선택 등에는 관료 개인의 재량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북한의 압박과 무관하게 남북 경협은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평양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해 10월 안에 열기로 했던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 남북 공동조사는 약속한 시한을 넘겼다. 폼페이오 장관이 예고한 북·미 간 실무회담마저 열리지 않고 있다. 

 

남은 것은 리 위원장 발언에 대한 남한 내 분노 뿐이다. 리 위원장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언이 등장하며 진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31일 리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재벌총수 3~4명에게 직접 전화를 했으나 그런 일이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1월1일 "기업 총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이 정권이 이렇게 몰상식하고 무서운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찌됐건 북한이 지적하는 '더딘 남북 경협 진도'도 자연스레 표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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