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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페미니즘 공부하는 엄마들의 모임 ‘부너미’ 회원들


우리 사회에서 ‘엄마’를 향한 시선은 두 가지다. 엄마의 희생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건 이미 옛날이야기다. ‘맘충’이란 단어가 보여주듯, 어느새 엄마들도 혐오의 대상이 됐다.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엄마들은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불리기도 한다. 엄마들은 “한남유충(어린 남자아이를 비하하는 말)을 키우는 흉자(남성 편을 드는 여성을 일컫는 말)”로 묘사된다.

이런 삐딱한 시선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엄마들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모임 ‘부너미’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부너미’는 아궁이 속 작은 언덕을 말하는 ‘부넘이’를 바꾼 말이다. 부넘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연기가 역류하는 걸 막고 아랫목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부넘이처럼 우리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역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기여하자는 의미에서 모임 이름을 부너미로 지었다”고 했다. 회원은 읽기팀 10명, 쓰기팀 10명. 모두 최소 17개월에서 최고 8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이 모임에선 자신들이 쓴 독후감을 엮어 출간하는 등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부너미 회원 중 다섯 명을 9월3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에서 만났다. 이곳은 부너미 회원들이 매달 모임을 갖는 곳이다. 이들은 “엄마들도 여성으로서 한 개개인으로 봐 달라”면서 “‘엄마’라는 프레임에 자신들을 가두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페미니즘에 입문한 뒤로 가족들과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스스로 “가부장제 최전선에서 가부장제를 부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도 평가한 이들은 어쩌다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됐을까.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부너미 회원들과의 ‘수다’를 옮겨 적었다.
 

9월3일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에서 페미니스트 엄마들 모임 '부너미' 회원 다섯 명과 인터뷰를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김여사’에 분노한 진짜 ‘여사’들

페미니즘에 왜 관심을 갖게 됐나.

이성경 “‘페’자도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주차에 서툰 운전자를 보면서 “저 아줌마는 왜 이렇게 운전을 못하냐”고 하는 거예요. 듣는 아줌마로서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여잔지 남잔지, 젊은지 늙었는지도 안 보였는데. 알고 보니 운전자가 남자였던 거죠. 그래서 남편에게 성을 냈더니, 돌아오는 말이 “네가 페미니스트야 뭐야”였어요. 이전엔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이날은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페미니즘 책을 사 읽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내가 페미니스트가 뭔지 봐야겠다, 남편에게 페미니즘이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설득해야겠다.’ 지금은 남편이 많이 설득 된 상태에요. 제가 거의 사람 만들었다고 봐야죠.”

유보미 “​저는 임신했을 때 페미니즘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임신 초기에 입덧이 정말 심했는데, 출근길에서 사람들이 저를 그냥 숙취 때문에 헛구역질 하는 취객으로 보더라고요. 임산부 목걸이를 하고 있어도 저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저도 임신 전에 그랬던 것 같아요. 여성이 아이를 가졌을 때 받는 차별을 몸소 체험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수정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어요. 아이를 안고 밖을 나가면 어른들이 혀를 차며 ‘발랑 까져가지고’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어요. 어느 날은 아이와 함께 카페에 들어갔는데, ‘어 맘충이다’라는 말이 너무 크게 들리는 거예요. 그날 설거지를 무의식 상태에서 하는데 갑자기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근데 그 분노를 해결할 길이 없었어요. 표현할 언어가 없었으니까. 그때부터 내가 화난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게 가부장제 때문이란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페미니즘이란 언어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이성경 “​엄마들이 책 읽고 공부한다고 그러면, 할 일 없으니까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모임 있는 날에도 직장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쪼개서 오는 엄마도 있고요. 자기 사업하는 경우도 있고, 남편 대신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윤민아 저는 애 셋을 독박 육아 하고 있어요. 아이 셋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시간이 남아서 취미 수준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페미니즘이 간절한 거예요. 페미니즘이 엄마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놓을 수 없는 거예요.”​

  
ⓒ 시사저널 최준필·양선영


■ ​엄마의 분노 잠재운, 간절했던 페미니즘


부너미 모임을 시작하고 달라진 게 있다면. 특히 남편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수정 “​예전엔 미친 여자처럼 남편에게 화를 냈어요. 저는 집에서 제가 생계부양자거든요. 부너미를 만나고선, 다른 회원들에게 조언을 얻으면서 남편 입장을 더 헤아리게 됐어요. 지금은 대화가 더 잘 돼요. 남편도 알고 보면 가부장제의 피해자거든요. 단지 남자이기 때문에 갖게 된 젠더 권력 때문에 남편도 부담스럽죠. 예전엔 이런 걸 몰랐는데, 우선 저부터 저를 존중하게 되니까 남편이나 아이들도 존중하게 되더라고요.”​

 

양효진 “​페미니즘을 공부하니까 전략적으로 설득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이걸 알지 못했으면 남편에게 나의 답답함을 호소할 때 화부터 냈을 텐데, 지금은 안 그러거든요. 생각해보면, 결혼생활에선 해야 할 게 가사·육아·근로 3개인데, 이걸 2로 나눠도 0.5씩이 과중해요. 잘못 나누면 독박 쓰는 거고요. 페미니즘을 배우고선 그런 일을 남편과 공평하게 나눌 수 있게 됐고, 서로 짐을 많이 덜었죠.”​

 

이성경 “​저도 남편하고 사이가 좋아진 케이스예요. 일단 제가 행복하니까, 남편이나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다 달라요. 엄마가 10명이고 페미니스트가 10명이면 다 다르게 살고 있어요. 남편이랑 좋아진 경우도 있고, 나빠진 경우도 있을 거고요. 페미니즘을 떠나서 둘의 관계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싸울 사람과는 싸우는 거고, 잘 지낼 사람하고는 잘 지내는 거죠.”​

 

유보미 그냥 엄마들 모임도 있어요. 조리원이나 어린이집 엄마 모임처럼. 근데 거기서는 느낄 수 없는, 부너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날 비난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날 바라봐주는 거요. 저희가 ‘샘’이란 호칭을 쓰는 것도 그래서예요. 누구 엄마라든지, 언니 동생 하지 않고 선생님으로 존중하고 있어요.”​

 

결혼을 꺼려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독박육아나 시댁에 대한 부담 때문인데. 이미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 입장에서, 비혼비출산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유보미 “​자기가 원하면 결혼 안하면 되고 아이 안 낳으면 돼요. 근데 저희가 속상한 건, 단지 엄마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단 이유만으로 ‘가부장제 부역자’라며 싸잡아 비난받는 거예요. 그 사이에서 저희는 나름대로 가부장제를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다 이혼하고 다 혼자살 순 없잖아요.”​ 


양효진 “​이성애잔데 어떡해요. 내가 행복하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데, 이성애자에게 남자를 만나지 말고 혼자 살라고 강요하는 것도 답은 아니거든요. 이런 트렌드 속에서 우리 엄마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살면 남편이랑 같이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거 같아요. 좋은 선례를 만드는 거?”​


윤민아 “​그렇다고 결혼을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워낙 사회에서 엄마를 다르게 취급하니까. 엄마는 애를 무조건 낳아야 하는 것처럼, 애 낳는 기계처럼 취급하는 거요. 세상이 엄마라는 가치를 이렇게밖에 평가를 안 하는데, 저는 양심상 여성들에게 이런 데에 뛰어들라고 못하겠어요. 하지만 이왕 들어왔으니까, 주저앉기보다 뭐라도 해야겠어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그게 페미니즘이고요.”​

  
ⓒ 시사저널 최준필·양선영


■ ​가부장제 부역자? 가부장제 전투사!


교육 현장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나.

양효진 너무 필요해요. 딸이 자동차를 좋아해요. 근데 그걸 가지고 어린이집에 가면, 원장님이 여자 애가 왜 자동차를 가지고 노냐고 걱정해요. 그게 뭐 어때서요? 성평등하게 교육하는 선생님이나 학교를 만나려면 운이 좋아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그냥 집 근처 어린이집, 집 근처 학교를 보내도 되는 사회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성경 집에서 기껏 성평등 교육을 시켜놓으면, 밖에서 또 성차별 관점을 쌓아 와요. 집에서 파랑은 남자, 분홍은 여자색이 아니라고 가르쳐도, 유치원에서 그렇게 구분을 지어서 놀아요. 진짜 복불복이에요. 선생님들부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곧이곧대로 흡수하거든요. 정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선생님인데, 그분들이 성차별적 말을 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겠어요. 근데 지금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거의 매장당하다시피 하는 판국이니까….”​

 

페미니즘을 아이 훈육에 접목한 사례가 있다면.

윤민아 “​‘친할머니 외할머니’ 단어를 안 써요. 왜 아빠의 엄마만 ‘친(親)’하고, 엄마의 엄마는 바깥(외·外)이에요? 또 ‘남자는’이나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안 하려고 해요. 이런 말이 성차별의 뿌리거든요.”​


이성경 “​페미니즘이나, 폭력 같은 단어를 아이들에게 노출하고 있어요. 애들이 유연하니까 오히려 받아들이는 게 쉽거든요. 어느 날은 아들이 누나한테 “누나 내가 하기 싫다는 거 계속 하잖아, 이거 폭력이야!”라고 하더라고요. 4살인데도 다 이해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이런 어휘를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쓰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보미 아이가 아직 어려서 대화는 안 되는데,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해요. 남편이랑 저랑 동일하게 육아하고 살림하는 거요. 남편이 주방에 있는 모습도 자주 노출시키고요. 또 교육 컨텐츠를 엄청 신경 써요. 가령 요즘 유행하는 ‘아기상어 송’은 성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는 전형적인 노래거든요. 아빠는 힘이 세고 엄마는 예쁘다는 그런 거요. 이 모임에서 알게 된 콘텐츠인데, ‘맥스터 핀스’라고 흑인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만화가 있어요. 그냥 보면 여아인지 남아인지 몰라요. 이렇게 양성성을 드러낸 컨텐츠를 주로 보여줘요.”​

 

이수정 “​성기부터 정확하게 지칭했어요. 남자아이는 ‘고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잖아요. 근데 어느 날 아이가 “엄마는 왜 고추가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고추가 없는 게 아니라, 음순이 있는 거야”라고 해줬어요. ‘없다’는 말 자체가 결핍을 의미하는 거고 열등성을 전제로 하잖아요. 엄마가 생리하는 모습도 노출하고 있고요. 일부러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더 보여주는 편이에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엄마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양효진 “​우선 만나는 게 중요해요. 같은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세요. 뭐든 실천하는 게 어렵거든요. 혼자 있으면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놓아버리고 뒤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이야기를 하고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내가 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이성경 “​만남이 중요해요. 부너미 회원 추가 모집 문의가 많이 오는데, 그냥 본인이 만들어도 돼요.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면 되거든요. 스스로 만들고 교류하면서, 엄마·아내·며느리 이런 역할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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