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비서실 확대보단 행정부의 정무직 시스템 구축해야
합계출산율 0.97명이다. 합계출산율 1마저 무너진 사건은 대한민국의 ‘교착과 정체’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라는 산맥을 넘기 위해 ‘비전2030’이라는 로드맵을 설계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으나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저출산 문제만이 아니다. 대학 입시 등 교육 문제,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복지확대와 증세, 부동산 문제 등 대한민국의 민생을 좌우하는 수많은 쟁점에 대해 논쟁은 계속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교착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
관료 시스템에 민주적 통제 필요한 까닭
왜 그럴까? 대부분의 교착 쟁점들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뿌리 깊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는 이런 유의 충돌과 갈등을 관(官) 주도의 강력한 행정력으로 해결해 왔다. 그러는 동안 경제 규모, 산업과 직업, 시민의식이 엄청나게 확대 발전했다. 시민과 시장의 힘이 커질수록 이익의 충돌과 갈등은 조정하기 어려워진다. 행정 중심의 관치로는 그 충돌과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제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 대한민국의 경제사회 쟁점을 해결하는 주된 해법은 ‘민주적 합의’다.
민주공화국 책임정치(responsibility)의 핵심은 ‘반응(response)’하는 것이다. 시민, 시장의 움직임과 목소리에 반응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 ‘반응’이 개혁이고 혁신이다. 시민과 시장에 얼마나 제대로 반응하느냐가 그 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좌우한다. 그러나 관료 시스템은 반응성이 약하다. 약해야 한다. 법과 규정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은 관료 시스템에 민감한 ‘반응’을 요구해선 안 된다. 정해진 법과 규정대로 정확하게 집행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따라서 관료 시스템에 우리 사회의 복잡한 경제사회 갈등을 풀기 위한 민주적 합의를 이끌어 내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관료 시스템(집행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정무적 지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무적 지휘란 국민주권을 위임받은 대의권력이 집행부에 방향을 제시(법, 예산, 책임자 파견)하고, 제대로 집행됐는지 점검(조사, 감사)함으로써 시민과 시장의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정무적 지휘)를 담당하는 대의권력은 대통령과 의회다. 원래 국민주권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제대로 하려면 의회 정부가 적합하다. 그 비교우위는 20세기 민주주의 역사에서 확인됐다고 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의회와 정당에 대한 주권자의 신뢰가 너무 낮다. 이 엄연한 현실이 바뀌려면 앞으로 10년, 2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대통령 정부를 채택하고 있다. 정무적 지휘의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출된 대의권력’이면서 ‘집행부의 수장’이다. 따라서 ‘민주적 대의’와 ‘효율적 집행’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원래 대통령의 주된 임무는 ‘효율적 집행’이었다. 대통령제를 처음 구상한 미국에서도 신생 연방의 강력한 통합, 독립전쟁의 지휘를 위해 강력한 집행부 수장이 필요했고, 그 집행력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주권자의 직접선출이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프랑스도 알제리 사태 등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강력한 집행부 수장으로 드골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받아들였다. 그 외에 대부분 개발과 안보가 시급했던 나라들, 민주적 대의보다는 효율적 집행이 우선 급했던 나라들이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이승만,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그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대통령 정부의 양면성은 지난 30년 동안 우리 헌정 현실에서도 일관되게 반복되고 있다. 선거 직후 1~2년간은 선거 민심과 공약 등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대의권력의 성격이 강하고, 집권 후 2~3년이 지나면 집행부 수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진다. 집권 초기에는 관료 시스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하게 하지만(또는 할 수 있지만) 집권 중반 이후에는 관료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점점 높아지게 된다. 이처럼 대의권력으로 출발해 집행부 수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 대통령 정부의 딜레마다. 대통령 정부가 대의성보다 집행성이 강해지는 것을 막고 관료조직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데 성공하려면 대의적 정무적 시스템을 보강해 줘야 한다.
대통령 정부의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 대의성을 유지하는 임무는 기본적으로 내각에 주어져 있다. 그러나 거대한 관료조직에 대한 정무적 지휘를 제대로 하려면 내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보조기관인 대통령 비서실의 규모와 역할이 커진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하이어라키(Hierarchy) 조직이지 대의성을 띠는 기관은 아니다. 비서실이 커지면 대통령 정부는 대의성보다 집행성이 강해진다. 중국이나 조선의 왕정시대에도 관료조직을 직접 지휘했던 것은 지금의 내각에 해당하는 의정부와 6조 등 공식 정무 시스템이었다. 왕의 비서실이었던 승정원은 관료조직의 정무적 지휘에 직접 나서는 것을 엄격하게 경계했다.
정당 중심의 대통령 정부로 한 걸음 더
대안은 정당 중심의 대통령 정부로 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을 기반으로, 그 정당의 자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정무적 지휘를 강화하는 것이다. 내각의 장·차관, 정책보좌관 등 고위공무원, 이를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국무조정실, 예산을 편성하는 예산조직 등에 정당과 의회의 자원, 즉 대의성이 강한 자원을 적극 파견하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을 직접 확대하기보다는 대통령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정무적 자원으로 행정부의 정무직 시스템을 구성해 관료조직의 정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길로 가기 위해서는 개헌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상하고 시도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해찬 책임총리제, 안보분야 정동영-사회분야 김근태-경제분야 김진표 등 정당 지도자의 분야별 부총리제, 기획예산처의 독립, 장관 정책보좌관제도 신설 등 관료조직의 정무적 지휘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 바 있다.
청와대 권력이 강하다는 비판은 어느 정부나 집권 초기에 겪게 되는 일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에 의회의 다수파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촛불민심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집행이 불가피했다.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갈 때가 됐다. 긴밀하고 실질적인 당정 협력을 통해 정당 중심의 대통령 정부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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