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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대상 물색 후 성적으로 길들여 상습 성폭행…처벌 근거 미약

최근 광주광역시의 교육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지역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1학년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아무개씨(36)는 지난해 9월부터 해당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제자인 학생을 성적 착취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6월부터 다른 반인 A양(16)에게 접근해 사적 만남을 가져왔다. A양과 친밀감을 쌓게 되자 자신의 차량에서 손을 잡거나 입맞춤을 하는 등 신체접촉을 했다.


그의 성폭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7월부터다. 여름방학 전에는 A양의 주거지 인근에 원룸까지 빌려 수시로 만났다. 그리고 원룸, 숙박업소, 차량 등에서 B양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강제로 추행했다. 김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관계 장면을 수차례 촬영하기도 했다. 


김씨의 범행은 우연한 기회에 탄로 나게 된다. 8월25일 주말을 맞아 A양은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오겠다”며 외출했다. 하지만 A양은 할머니 집에 가지 않았고, 어머니가 당일 행적을 추궁하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 일러스트 오상민



교사가 제자 성적 착취 


A양은 이날 김씨의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관람했다. 밤이 되자 둘은 호텔로 이동해 함께 잤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A양의 어머니는 8월27일 학교 측에 신고했다. 


학교 측이 경찰에 고발하면서 수사에 들어갔고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관계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강압적인 성관계가 아니라 애정관계에 따른 것”이라며 강제성을 부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A양의 정신을 자신에게 길들여왔다. 김씨는 A양의 호감을 사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환심을 샀다. 평소 먹을 것을 사주고 집에 바래다줬고, 아프다고 하면 약까지 챙겨줬다. 


A양에게 용돈을 주는가 하면 신용카드까지 건네며 쓰도록 했다. 김씨는 이런 방식으로 A양이 자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도록 했다. 심지어 1학기 기말고사 직후에는 차량 안에서 특정 교과목의 답안지를 주고 틀린 문제를 고치도록 했다. 


A양이 자신에게 의존하자 김씨는 점차 신체접촉 수위를 높여갔다. 차량에서 가벼운 신체접촉을 한 뒤 성관계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씨가 경찰에서 “강제성이 없었다”고 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반해 A양은 “처음 성관계를 시도할 때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며 “성관계가 아니라 성폭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의 위력에 저항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입건하고, 교사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인 성관계를 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해당 학교는 8월27일 김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광주시교육청도 경찰의 수사와는 별도로 관련 내용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탁틴내일 아동·청소년 성폭력 상담소’ 등 청소년단체들은 김씨의 범행은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루밍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가해자는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피해자와 신뢰·지배 관계를 형성하면서 성적으로 길들여 간다. 


주로 가정에서 방임되는 취약 아동이나 청소년이 대상이 된다. 선물이나 고민상담 등을 통해 신뢰를 쌓은 뒤 신체접촉을 시작으로 성범죄에 이른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인정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가해자는 이런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십분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는 그루밍을 거치며 가해자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피해자는 성적 학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범행으로 인식하기도 어렵다. 


그루밍 성범죄는 ‘교사와 제자’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친족 간에도 그루밍 범죄가 일어난다. 고등학교 3학년인 B양(19)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부모는 B양을 정서적으로 방치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B양은 외삼촌 C씨(40)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C씨가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자 B양은 더욱 그를 의지하게 됐다. C씨는 수시로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고 연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앱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C씨는 딴마음을 품었다. 2015년부터 조카를 상대로 성적 접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제로 추행했고, 이후 수위를 높여 성폭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B양이 외삼촌의 바지 버클을 움켜잡고 힘껏 밀치는 등 강하게 반항했지만, C씨의 위력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후 B양은 약 3년 동안 외삼촌 C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런 사실을 눈치챈 B양의 부모가 C씨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비로소 범행이 멈췄다. 이 사건도 조카의 취약한 정신 상태를 이용해 호의를 베푼 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사례다. 

 
제자인 장애 여학생들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원 특수학교 교사 ⓒ 뉴스1



27살 어린 중학생 성폭행 무죄 선고


그루밍 성범죄의 문제 중 하나는 처벌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은 만 13세 이하로 규정돼 있다.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면 상대 남성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외삼촌 C씨의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C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조카와 “연인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통화 내역, 선물을 주고받은 내역, 스마트폰앱의 대화 내용 등을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가 조카의 진술뿐”이라며 “삼촌이 조카를 때리거나 위협한 사실이 없고 적극적인 저항의 표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알몸 사진을 전송한 사실이 있고 경찰 신고가 이뤄진 뒤에도 ‘도망가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며 “강간을 당한 피해자의 태도라고 하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대표적인 그루밍 범죄는 자신보다 27살 어린 중학생을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사건이다. 조아무개씨(49)는 2011년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당시 15세이던 D양(15)을 처음 만났다. 조씨는 연예인을 화제로 D양과 가까워지면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D양이 임신한 사실을 안 조씨는 가출을 유도했다. D양이 집을 나오자 약 한 달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했다. 그는 임신한 상태인 D양과 수시로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출산 후 D양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조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1·2심은 조씨의 유죄를 인정해 각각 징역 12년,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학생이 부모 또래이자 우연히 알게 된 남성과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해 성관계를 맺었다고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해 조씨는 “사랑해서 이뤄진 관계로 강간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조씨의 처벌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대법원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대법원은 2014년 검찰이 지목한 성폭행 시점 이후로도 D양이 조씨를 계속해서 만나왔고, D양이 다른 사건으로 수감된 조씨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낸 것 등을 근거로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적·제도적 기준 마련 우선돼야 


D양은 “두려움과 강요 때문에 편지를 작성했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은 2015년 10월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양 진술을 믿기 어렵고 그 외의 다른 증거들만으로는 범죄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몰이해와 편향적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며 무죄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위 두 사건에서 재판부는 “두 사람은 연인 사이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광주 제자 성폭행 사건은 향후 검찰과 가해자 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교사 김씨가 “성관계에 강제성이 없고 연인 사이였다”며 무죄를 주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강원도 태백의 한 특수학교 교사(44)가 10대 장애 여학생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가 2014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 3년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 사례는 43.9%에 이르렀다. 피해 당시 연령은 중학생 또래인 14~16세(44.1%)가 가장 많았다. 11~13세도 14.7%, 6~10세도 14.7%나 됐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그루밍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지금의 만 13세에서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처럼 만 16세로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그루밍 행위 자체를 제재할 수 있는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루밍 성범죄는 6단계를 거친다 

 

그루밍 범죄는 보통 여섯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먼저 가해자는 피해자를 물색하는데, 감정적으로 취약하거나 결손 가정의 아동·청소년을 노린다. 대상을 정하면 일정기간 관찰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 다음 접근해서 피해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깊은 신뢰감을 쌓는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종속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을 벗어날 수 없도록 고립시키는데, 둘만 함께 있는 상황을 만들어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충분한 감정적 의존과 신뢰의 단계가 되면 신체접촉을 시작하게 되고, 점차 수위를 높여 성관계를 맺는 단계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런 행위들을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연인 관계’인 것처럼 행동한다. 

 

성관계를 시작하면 피해자의 계속적인 참여와 침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다. 비밀을 유지하도록 단속하고 만약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면 사회적 비난을 받는다고 겁을 준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적 학대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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