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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포인트 현금으로 바꾸는 일 비일비재… ‘법망’ 비웃는 연타베팅 기계도 등장

 동네마다 있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 붐볐다. 성인오락실 ‘황금성’ 얘기다. 황금성은 대중에겐 낯설지만, 성인오락실 업계에선 ‘스타벅스’다. 그만큼 매장이 많고 단골은 발길을 끊지 않는다. 허름한 동네 어귀부터 대학가, 백화점 앞까지 황금성은 대한민국 전역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8월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시내에 위치한 황금성 5곳을 잠입 취재했다. 취재 결과 황금성은 ‘양지에서 자라난 독초’ 같은 곳이었다. 합법을 내건 영업장이지만, 그 가운데 자리한 ‘편법과 불법’의 모습은 어느 게임장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8월6일 서울 종로구의 황금성 오락실에서 한 남성이 자동 베팅기계를 올려놓은 채 오락기를 바라보고 있다. ⓒ시사저널 박성의


 

“행운을 이 값에 파는 곳이 여기 말고 어디 있는데?”

 8월3일 금요일 오후 8시. 서울시 동대문구 한 황금성 오락실에서 만난 김한표씨(가명·64)가 ‘이곳에 왜 왔느냐’는 우문(愚問)에 답했다. 그는 꾸깃꾸깃한 만원짜리 지폐를 부채처럼 흔들어 보였다. 기자가 웃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 초록색 새마을운동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고쳐 썼다. 김씨는 이어 “나라가 주지 못하는 낙(樂)을 이렇게들 찾는 것”이라며 주위를 휙 하고 둘러봤다. 150평(496㎡) 규모의 오락실에는 퍼런 지폐를 손에 쥔 50여 명의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오락기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황금성은 신세계였다. 오락실이란 친근한 간판 앞에 성인이란 두 글자만 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곳을 메운 사람과 분위기는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금성만의 룰(rule)이 있었다. 그 룰은 일반 오락실에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황금성의 단골들끼리는 알 수 있지만, 그곳에 처음 발을 들인 이방인으로선 알 길이 없다. 도심 속 황금성은 ‘그들만의 성’이자 ‘그들만의 리그’였다. 황금성에 처음 들어간 기자가 금방 ‘초짜’ 티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입장 후 들어온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일반 오락실은 오락기마다 의자가 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플레이어는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조종 버튼을 연타한다. 그러나 황금성의 사람들은 오락기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지 않는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오락기를 관망할 뿐이다. 그래서 황금성의 내부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한참을 멀뚱히 쳐다보다 사람이 없는 빈 게임기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런 뒤 오락기 버튼을 가리고 있는 정체 모를 네모난 상자를 치웠다. 돈을 넣으려는 찰나, 뒤에서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술 냄새를 풍기는 한 중년 남성이 눈을 치켜뜬 채 “이 모자란 XX가 재수 없게 뭔 짓을 하는 거냐”며 기자를 거칠게 밀쳤다. 그러더니 잽싸게 네모난 상자를 오락기 버튼 위에 다시 올렸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쭈뼛거리며 서 있는 기자에게 박건술씨(가명·65)가 다가와 “처음 온 티 내지 말고 내가 알려주는 대로만 하라”며 자신의 옆자리로 안내했다. 박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 네모난 상자는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베팅 도우미 기계였다. ‘구름위의용’ ‘화신성’ ‘불타는 불새’ 등과 같은 황금성 게임은 일종의 카드 게임이다. 쉽게 말해 같은 그림이 나오거나 특수한 그림이 등장하면 포인트를 얻는 구조다. 그림을 직접 골라야 하는 경우가 있어, 게임 한 판을 진행하려면 버튼을 반복적으로 눌러야 한다. 이 같은 수고를 덜기 위해 자동으로 시작과 베팅 버튼을 눌러주는 기계가 자리마다 마련돼 있던 것이다.  부산에서 올라와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고 있다는 박씨는 “(베팅 도우미) 기계만 올려놓으면 게임 방법 같은 것은 몰라도 된다”며 손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흔들어 보였다. 돈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어차피 돈 넣고 돈 먹기 게임이라 머리 쓸 필요가 없다. 1만원 한 장 넣으면 1시간은 (오락기가) 알아서 돌아간다. 앉아서 푹 쉬다가 ‘터졌다’는 음악소리 들리면 그때 멈추는 것”이라고 말한 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실제 황금성은 꽤나 괜찮은 피서지였다. 더위를 피해 실내에 모여앉아 몇 만원, 몇 천원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난장판보다는 평화에 가까웠다. 황금성이 도심 곳곳에 당당히 간판을 내건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황금성을 굴리는 룰을 이해하는 순간, 환상은 금세 신기루가 된다. 수차례에 걸쳐 경험해 본 황금성은 불법과 편법의 주춧돌 위에 세워진 오락시설이었다. 우선 ‘똑딱이’의 존재 자체가 편법이다. 현재 정부는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연타와 자동진행 기능이 있는 모든 게임물에 대해서는 등급분류 자체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고율배당 및 빈도수를 제한해 사행성 게임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똑딱이는 이 같은 법의 취지를 비웃는 장치다. 게임기 내에 자동연타 기능만 넣지 않으면 된다는 법의 허점을 악용한 셈이다. 결국 이 똑딱이 탓에 황금성에서는 개인의 베팅 한도도 크게 늘어난다. 한 사람이 여러 대의 오락기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어서다. 8월5일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의 한 황금성 오락실. 오후 7시를 갓 넘긴 시간, 오락실 내부에는 손님 20여 명이 있었다. 한산해 보였다. 그러나 오락기 100여 대 중 90% 이상이 작동하고 있었다. 손님 한 명이 2대 이상의 게임기를 작동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이 10대의 오락기에 1만~2만원씩을 넣고, 1시간에 10만원 이상 베팅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행성 간주 게임의 기준은 ‘1시간에 1만원 베팅’인데, 이를 훌쩍 뛰어넘는 셈이다.   
ⓒ시사저널 박성의


 

표어에만 그친 ‘불법 환전 금지’

 오락실 내 ‘불법 환전’ 장면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성인오락실에 ‘불건전’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힌 건 과거 ‘바다 이야기’ 사태부터다. 당시 바다이야기는 게임에서 얻은 포인트를 상품권 또는 현금으로 환전해 준 사실이 발각된 바 있다. 현재 황금성이 모든 매장마다 ‘불법 환전 금지’라는 팻말을 내건 이유기도 하다.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취재 결과 황금성 내부의 모습은 표어와는 달랐다.  8월6일 오후 7시, 퇴근 시간 무렵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황금성 오락실. 인근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 등이 있는 터라, 오락실은 흰머리가 수북한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모든 오락기 위에는 이미 ‘똑딱이’가 작동하고 있었다.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베레모를 쓴 한 노신사가 다가와 “자리 없으면 내 자리 줄게”라고 말했다. 그가 안내한 오락기에는 1만8900포인트가 적립돼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2만원 주면 2000원 거슬러줄 테니 이 자리 사 가”라며 재촉했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꾸는 불법 환전을 시도한 것이다.  기자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포인트를 돈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냐”라고 되묻자, 노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제야 뒤에서 지켜보던 관리자가 다가왔다. “이분 또 이러신다. 이런 거(환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노인이 멋쩍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오락실에 걸린 현수막에는 ‘불법 환전 시 강제퇴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그러나 관리자는 노인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사이 노인은 다시 다른 무리로 섞여 들어가 오락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특정인만의 일탈일까. 실제 황금성의 모든 업주들은 한결같이 “환전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기자가 방문한 모든 업장에서 손님 간의 환전 혹은 환전 시도를 목격할 수 있었다. 황금성에 6년째 다닌다는 한 50대 남성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냥 게임하자고 여기 오는 사람이 많겠나. 2만 딱지(게임포인트를 이르는 속어)쯤 따면 손님끼리 게임장 밖에 나가서 현금으로 바꾼다. 그렇게 계속 (돈과 포인트가) 돌고 돈다. 사장이 몰라서 안 막겠나? 업장에 피해만 안 가게 하라는 거지”라고 말했다. 기자가 5일간 황금성에서 보낸 시간은 10시간. 그 기간 지갑에서 나간 돈은 11만원. 그 안에 총 3번의 잭팟이 터졌으며, 6만 포인트가량을 벌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는 ‘운이 좋네’라는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인트를 불법으로 환전했다면 약 5만원을 잃은 것이고, 환전하지 않았으니 고스란히 전액을 잃은 셈이다. ‘행운’을 찾으러 황금성에 온다는 사람들. 그러나 기자는 행운을 손에 쥘 수 없었다. 단지 운의 문제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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