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개봉한 멕 라이언,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시애틀을 로맨틱한 기적이 이뤄지는 곳으로 세상에 알렸다. 2000년대 이후 ‘스타벅스’가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하면서 시애틀은 마치 커피의 성지처럼 떠오르게 된다. 세상에 이처럼 잘 포장된 도시가 또 있을까. 도시를 대표하는 명물은 대개 하나면 족하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로마 하면 떠오르는 콜로세움, 아테네 시내 전체를 굽어보는 파르테논 신전, 런던을 고풍스럽게 하는 빅벤 등이 그 예다. 반면 시애틀을 상징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지나 현대식 고층건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느 도시와 다르다. 우리나라의 노량진수산시장 격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위치한 스타벅스 1호점은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님을 받느라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룬다. 20평 남짓한 공간은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는 줄과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줄로 양분된다. 손님들은 대개 20여 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저마다 인증샷을 찍느라 싱글벙글이다. 커피 맛이 아닌 스타벅스 1호점이 주는 상징성 때문에 온 것이니 여기서 맛이 좋으니 나쁘니 품평하는 사람은 없다. 매장 내에는 신나는 음악이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직원들은 가볍게 어깨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 정겨운 눈짓을 하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음꽃을 터뜨리기도 한다. 매일같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손님들을 받으며 불평도 할 만한데 직원들은 하나같이 신나 있다는 점은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무엇이 저들을 흥겹게 하는 것일까.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부터 마흔은 족히 넘었을 중년의 여성까지 직원 간에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었고,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게 바로 스타벅스 1호점의 힘이었다.
시애틀의 명물 된 ‘카페 다르테’와 ‘카페 비타’
스타벅스는 2014년 12월, 하워드 슐츠 회장이 밝힌 대로 스타벅스의 미래라고 자부할 만한 세계 최대의 스타벅스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테이스팅 룸(Starbucks Reserve Roastery and Tasting Room)’을 캐피톨 힐(Capitol Hill)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개장했다. 구상 기간만 10년이 걸리고, 면적은 420여 평에 달하며, 한 매장을 오픈하는 데 25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던킨도너츠와의 경쟁에 직면하고,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블루보틀과 스텀프타운 커피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그야말로 스타벅스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매장인 것이다. 건장한 남자의 힘으로도 버거운 육중한 나무문을 밀고 매장에 들어온 관광객들은 엄청난 규모와 황동색의 휘황찬란한 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필자 역시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 스타벅스가 이 매장의 설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스페셜티급 원두가 볶이고, 포장되며, 추출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공장형 매장이었다. 말 그대로 오감이 즐거운 특별한 매장을 만들었는데,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커피를 주문하고 매장에서 받아가는 원격주문서비스인 ‘사인렌오더’까지 도입한 점은 미래형 커피 매장의 일면을 보는 듯했다. 시애틀 시내에는 스타벅스처럼 상업으로 프랜차이즈화되지 않으면서 오랜 세월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동네 명물이 된 카페도 많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멋스럽다. 비록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는 아니지만, 시애틀 시민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