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일본프로야구 투·타 맹활약 ‘사기 캐릭터’ 오타니 쇼헤이… “메이저리그 도전하고 싶은 마음 여전히 강하다”
아무리 봐도 만화 캐릭터이다. 더 깊게 파고들면 사기 캐릭터이기도 하다. 일본프로야구(NPB)의 오타니 쇼혜이(大谷翔平·23·닛폰햄 파이터스)를 볼 때마다 비현실적인 외모와 성적, 인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NPB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일본 스포츠계의 아이콘으로 꼽힐 정도로 오타니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에서만 인기가 있는 게 아니다. 그를 데려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오타니 영입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모두 오타니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투수·타자 모두 소화하는 ‘二刀流’
오타니가 속한 닛폰햄 파이터스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닛폰햄 훈련장에는 수십 명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다. 닛폰햄 구단이 2017 시즌 종료 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오타니의 미국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메이저리그 구단은 물밑에서 오타니 영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초, 닛폰햄 구단은 오타니가 오른 발목 부상으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가 어렵다고 발표했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오타니를 마운드에 올려 흥행에 불을 지피려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타니야말로 중요한 흥행 카드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한 오타니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재활 훈련에 한창이었다. 2월7일(한국 시간) 닛폰햄 스프링캠프장을 방문했을 때 오타니의 몸 상태는 상당히 좋아 보였다. 전력 달리기를 하는 모습에서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단, 스파이크를 신고 피칭 훈련을 하는 건 아직 무리라는 게 닛폰햄 수석 트레이너의 설명이었다.
오타니의 지난 시즌 성적은 투수로 10승4패 평균자책점 1.86, 타자로 타율 0.322 22홈런을 기록했다. 프로 통산 4시즌 성적은 39승13패 평균자책점 2.49, 그리고 40홈런. 시속 165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장타력을 겸비한 그에게 메이저리그가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오타니는 원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선 일본프로야구가 아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갑자기 닛폰햄 파이터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구단에서 내게 투수와 타자를 겸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과는 학생 때부터 선수와 캐스터 관계로 친분을 맺고 있었다(구리야마 감독은 TV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분이 닛폰햄 감독이 돼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입단 권유를 하는데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고교 시절부터 이미 160km의 속구를 던졌던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 LA 다저스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을 1순위로 지명한 닛폰햄 단장과 감독의 설득으로 일본에 잔류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선 투수와 타자 모두를 소화하는 오타니를 가리켜 ‘이도류(二刀流)’라고 표현한다. 일부 야구인들은 오타니의 투타 겸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지만 오타니는 투타 모두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오타니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지난 시즌 10승-20홈런-100안타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기록을 세우며 팀을 10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오타니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 중 한 가지. 과연 언제까지 투타 겸업을 계속할 것인가 여부다. 이에 대해 닛폰햄의 구리야마 감독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오타니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자신보다 구단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리야마 감독은 내 판단에 모든 걸 맡겨주셨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 인연을 맺는 팀에서 내가 타자보다는 투수로 활약하길 바란다면 그에 맞춰나갈 것이다. 물론 나로선 계속해서 공도 던지고 타격도 하는 걸 좋아하겠지만 프로이기 때문에 팀 입장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에 대해 “그 또한 내가 선택할 부분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우선 날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나(이 표현은 너무 겸손한 듯. 30개 메이저리그 구단이 오타니를 원하고 있는데).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미국 진출 시기에 대해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강하다.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보단 지금은 시즌 준비 잘해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MLB 사무국 ‘오타니 접촉 금지령’
오타니의 롤모델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이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다르빗슈를 목표로 삼게 됐고, 그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르빗슈와 오타니는 비(非)시즌인 겨울만 되면 일본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합동 훈련을 진행한다.
“늘 다르빗슈 선배처럼 되고 싶었다. 행운이었던 건 그가 닛폰햄 출신(2004~11년까지 닛폰햄 에이스로 활약 후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이란 사실이다. 그 공통점으로 인해 선배와 친분을 맺었고, 겨울에 훈련을 같이할 수 있었다. 선배로부터 배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로선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오타니는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하는 모습도 모범생 그 자체이다. 동료들과 원정 경기에서 밥 먹으러 나갈 때를 제외하곤 유흥문화와는 담을 쌓고 지낸다는 것이다. 오타니는 이에 대해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노는 것보단 혼자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고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는 게 취미이다. 가끔은 내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게 야구선수로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애리조나 닛폰햄 훈련장에는 일본에서 미국까지 건너온 100여 명의 야구팬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으며 셔터를 눌러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타니만 전담 취재하는 기자들도 40여 명이 넘었다. 그들은 오타니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오타니의 모든 걸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산케이스포츠신문의 에리카 다케이마 기자와 오타니의 발목 부상 여부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케이마 기자는 2017 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오타니의 미국 진출을 허용한 구단이 올 시즌 오타니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WBC대회 불참을 결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때 발목 수술까지 고려했다는 오타니의 몸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좋아 깜짝 놀랐다. 아마도 구단이 오타니의 미래를 위해 WBC대회를 건너뛰려 한 게 아닌가 싶다. 오타니가 WBC대회 출전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들었다. 부상과 대회 출전 여부를 놓고 고민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본다.”
닛폰햄 훈련장에서 만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중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극동아시아 스카우트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댄 에반스(Dan Evans)는 오타니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칭찬을 늘어놓았다.
“프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의 강점은 160km 이상의 강속구이겠지만,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영리함을 갖고 있다. 메이저리그 모든 팀들이 오타니를 탐내고 있다. 우리도 그중 한 팀이다. 투타를 겸하는 출중한 실력의 선수를 두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시카고 컵스 극동아시아 담당 스카우트인 페르난도 세기뇰(Fernando Seguignol)도 “오타니는 강속구 외에 타고난 성실함과 야구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선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번 지명타자 출전, 9회 구원투수 깜짝 등판
이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다소 멀리 떨어져서 오타니를 지켜봤다. 그 이유는 최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리그 소속 30개 구단에 닛폰햄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오타니와의 접촉을 금지한다는 ‘오타니 접촉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보는 오타니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타니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15 프리미어12대회를 통해 상대했던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김현수(30·볼티모어)를 꼽았다.
“타격 타이밍이 굉장히 뛰어났다. 박병호보다 체격이 크지 않았지만 김현수를 상대할 때 더 긴장되고 안타를 맞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던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어 관심이 더 많이 갔는지도 모른다.”
오타니는 지난 시즌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5차전에서 3번 지명타자로 출전했다가 9회 구원투수로 깜짝 등판해서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고 구속인 165km를 던졌고, 3명의 타자를 완벽히 제압한 후 팀을 일본시리즈에 진출시켰다. 과연 오타니는 어떻게 해서 16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게 됐을까. 물론 고교 시절에도 160km의 공을 던졌지만 165km까지 구속(球速)을 올린 건 엄청난 발전이다. 이에 대해 오타니는 거듭된 트레이닝을 통해 구속을 늘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운동을 통해 꾸준히 몸무게를 늘렸다. 100kg 이상 체중을 늘리면서 구속도 상승한 것 같다. 그리고 스물세 살이란 젊은 나이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일본 산케이스포츠신문은 닛폰햄의 베테랑 외야수 야노 겐지와의 인터뷰를 게재하며 동료 선수가 본 오타니에 대한 시선을 담았다. 야노 겐지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타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그는 휴일에도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야구만화를 볼 정도이다!”
일본 팬들에게 ‘꽃미남 야구선수’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만큼 방송 아나운서, 유명 모델 등과의 열애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오타니 쇼헤이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마이웨이’를 고집하며 팀 성적과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걸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는 분명 사기 캐릭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