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막힌 ‘포스트 이재현’ 작업, 새 일감 몰아주기로 뚫으려 하나
CJ그룹 계열사인 CJ CGV가 최근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다. 9월말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고발을 당한 지 2개월여 만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시행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왔다. 해당 법에 따르면, 자산이 4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를 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총수 일가까지 사법처리할 수 있다. 내부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또는 연 매출액의 12% 이상인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당초 조사 대상 기업은 40여 곳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공정위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곳은 5개다. 현대·한진·CJ·한화·하이트진로 그룹 등이었다. 공정위는 올해 초부터 이들 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벌여왔다. 그리고 CJ그룹을 비롯한 현대·한진 그룹에 차례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을 진행했다. CJ그룹의 경우, CJ CGV가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일감을 몰아준 것이 문제가 됐다.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재환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공정위에 따르면, CJ CGV는 2005년부터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42개 극장의 스크린광고 영업대행을 전속 위탁했다. 이를 위해 기존 중소기업들과의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또 지급수수료율 인하요인이 있었지만, 오히려 25%나 인상해 주는 등 거래상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2011년 국내 스크린광고 영업대행 시장의 1위 사업자에 오르기도 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손쉽게 부를 축적해 온 것이다. CJ그룹은 이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11월1일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CJ파워캐스트에 흡수합병시켰다. CJ파워캐스트는 11월30일 CJ올리브네트웍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됐다.
CJ그룹에 이번 제재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승계작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현재 CJ그룹의 후계자는 이 회장의 장남인 선호씨로 정해진 분위기다. 그러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승계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20대 후반인 선호씨는 2013년 CJ제일제당에 사원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막 시작한 단계다. 1960년생인 이 회장 역시 아직은 경영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다. 문제는 이 회장의 건강 상태다. 희귀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를 앓고 있는 데다, 신장 이식 수술 부작용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횡령과 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재판부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승계작업은 CJ그룹으로선 한시가 급한 사안이다. 물론 그동안 CJ가(家)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을 벌여왔다. 여기엔 그동안 재벌가에서 애용돼 온 방식이 적용됐다. 후계자가 보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운 뒤 이를 발판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승계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2013년에는 CJ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CJ그룹의 승계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이 회장은 당시 무기명채권으로 관리해 오던 비자금 500억원을 선호씨와 장녀 경후씨에게 나눠줬다.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98년부터 한시적으로 발행한 무기명채권은 비실명 거래가 가능해 ‘묻지마 채권’으로 불렸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500억원대 현금을 물려줄 수 있었다. 2013년 비자금 수사 당시 이런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무기명채권의 경우 자금 출처 조사는 물론 상속·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 승계 핵심으로 부상
이 자금으로 선호씨는 2006년 설립된 C&I레저산업에 출자해 지분 37.89%를 확보했다. 나머지는 이 회장(42.11%)과 경후씨(20%)가 나눠 가졌다. 이후 이 회사에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실제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0년 97%(총매출 137억원-내부거래액 133억원) △2011년 97%(164억원-159억원) △2012년 98%(143억원-140억원) △2013년 98%(123억원-120억원) △2014년 99%(127억원-126억원) 등이었다. 사실상 자생력이 전무한 셈이었다. 이를 두고 C&I레저산업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세습 창고라는 지적이 반복됐다. 2015년에도 147억원의 매출이 그룹 계열사에서 나왔으나, 그해 말 자산관리와 부동산컨설팅 사업부문을 CJ건설에 양도하면서 논란을 털어냈다.
또 다른 승계의 축으로 거론된 회사는 CJ파워캐스트다. 선호씨는 2010년 이 회사의 지분 24%를 매입했다. 이외에 경후씨(12%)와 이재환씨의 장녀 소혜씨(4%)가 보유한 지분을 더하면 총수 일가 지분율은 40%에 달했다. 이 회사 역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CJ파워캐스트의 내부거래율은 △2010년 45%(398억원-181억원) △2011년 49%(696억원-339억원) △2012년 50%(765억원-385억원) △2013년 51%(820억원-416억원) △2014년 48%(783억원-379억원) △2015년 48.7%(849억원-414억원) 등이었다. 이 회사는 11월30일 CJ올리브네트웍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지금은 CJ올리브네트웍스가 새로운 승계의 핵심 회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선호씨 등 CJ 3세들은 이 회사의 지분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이 회장은 2014년 12월 장남 선호씨에게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1.3%를 증여한 데 이어, 2015년 12월에는 11.35%를 선호·경후씨와 이재환씨의 자녀인 소혜·호준씨 등에게 나눠줬다. 또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흡수합병한 CJ파워캐스트를 CJ올리브네트웍스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신주 교환을 통해 추가로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선호씨(17.97%)와 경후씨(6.91%), 이재환씨(14.83%)와 그의 자녀인 소혜·호준씨(각 2.18%) 등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44.07%로 증가했다.
재계에서는 선호·경후씨가 보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이 이 회장이 보유한 지주사 CJ의 지분 42.08%를 확보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를 상장시킨 후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CJ 지분을 매입하거나, CJ올리브네트웍스의 덩치를 불린 뒤 CJ와 합병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통해서도 3세들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 회장이 보유한 CJ 지분 가치가 12월8일 종가 기준인 18만3500원으로 계산하면, 2조2525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CJ “특혜성 시비 일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
따라서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기 위해선 CJ올리브네트웍스의 규모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계열사들의 지원이 필수라는 시각이 많다. 문제는 CJ올리브네트웍스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CJ올리브네트웍스가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은 2802억원으로, 전체 매출 1조557억원의 26.5%에 달한다. 그러잖아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공정위의 타깃이 될 경우 승계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CJ그룹 관계자는 “CJ올리브네트웍스는 CJ파워캐스트 합병 이전에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다”며 “향후 내부거래 시 특혜성 시비가 일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CJ그룹이 승계의 새로운 축으로 CJ올리브네트웍스를 선택한 것도 이를 고려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사의 전신(前身)은 시스템통합(SI) 업체인 CJ시스템즈다. 2014년 12월 CJ올리브영을 흡수합병하면서 지금의 사명(社名)으로 바뀌었다. SI 업체의 경우 일감 몰아주기법 규제의 예외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 공정위는 보안성에 위험이 인정될 경우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그룹 계열사들의 보안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공정위가 한화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역시 SI 업체인 한화S&C를 조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어서다. 한화그룹 내 승계회사로 분류되는 이 회사는 CJ올리브네트웍스와 상황이 비슷하다. 한화S&C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지분 50%를 갖고 있는 것을 비롯해, 삼형제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절반가량이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나온 자금을 바탕으로 에너지 관련 회사들을 합병하며 덩치를 불려오고 있다. 한화S&C를 정점으로 한 소그룹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CJ그룹 관계자는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이 합병한 것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며 “SI 업체로서 예외 조항을 이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