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현대·기아차가 낸 ‘비밀정보 공개 금지’ 가처분신청 받아들여
“김 전 부장 자료, 짜깁기에 일부 틀리기도”
현재 김 전 부장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근거, 조만간 국민권익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계획이다. 올 1월부터 시행된 공익신고자보호법 제14조 3항에는 ‘공익신고 등의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에도 공익신고자 등은 다른 법령·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따른 직무상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김 전 부장은 시사저널 및 주요 언론사에 현대·기아차가 생산한 일부 차량의 기술 결함에 대해 추가 제보를 준비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법원에 요청한 ‘비밀정보 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서 현재 무산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은 11월17일 확정한 결정문에서 “자료를 제3자(공익신고자보호법 제6조에서 정하는 자 제외)에게 공개, 누설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김 전 부장의 제보가 언론을 통해 경쟁사로 흘러나갈 경우 현대·기아차가 받을 유·무형의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부장의 변호를 맡은 최재홍 호루라기재단 변호사는 “김 전 부장이 세타2 엔진 결함을 제기한 후 25명의 차량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조사를 요구한 것만 봐도 언론을 통한 제보는 공익성이 충분하다”면서 “언론사까지 공익 제보에 포함시키지 않은 법원의 판단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경향신문이 9월23일 현대·기아차 내부 자료를 인용해 “세타2 엔진의 콘로드 베어링 소착(燒着)으로 인해 엔진 소음 및 손상이 우려된다”고 보도하면서부터다. 문제 제기 후 현대차는 미국과 한국의 제조 공정이 다르다는 점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형 YF쏘나타의 불량률이 0.34%인 데 반해 국내 YF쏘나타의 불량률은 0.07%(전체 6033대 중 4대)로 낮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문제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청정도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불량률의 차이를 보면 국내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보배드림 등 국내 자동차 온라인 카페에서는 현대·기아차가 기술적 결함을 은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세타2 엔진은 현대차의 그랜저·쏘나타와 기아차의 스포티지·K5·K7 등에 탑재돼 있다. 김 전 부장은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YF쏘나타의 엔진 콘로드 베어링 부품의 불량률이 0.10%로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의 불량률 0.15%보다 더 낮게 나왔다”며 “이물질 제거를 위해 2013년 1월 ‘Wet Blast’(스프레이 분사 방식) 공정을 추가했지만 불량률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관련 자료는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자의 실수이며, 실제 국내에서 생산된 YF쏘나타의 불량률은 0.07%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현대차의 리콜 크로놀로지(Chronology·이력 보고서)에 “시동이 꺼진 후 재시동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로에서 차량이 견인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현대차에 다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세타2 엔진의 문제는 소음과 연결돼 있을 뿐 안전과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현대차의 무상 수리 결정은 꼼수” 반발도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올 8월, 2011~12년에 생산된 쏘나타와 관련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으며, 그 결과 차량 수리비용을 전액 보상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북부캘리포니아 연방지법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 내 세타2 엔진이 탑재된 2011~14년 쏘나타 구매 고객과의 집단소송에서 원고와 합의했다. 소송에 참가한 미국 운전자들은 엔진이 작동을 멈추지 않고 소음이 났으며, 현대차가 이런 결함을 숨기고 차량을 판매해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국내 소비자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10월12일 세타2 2.4 GDi나 2.0 터보 GDi 엔진을 장착한 차량의 엔진 보증 기간을 기존 5년 10만km에서 10년 19만km로 연장하기로 한 것은 국내 소비자들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 12만 마일(약 19만2000km)로 보증 기간을 늘린 것을 국내에서도 똑같이 적용한 것이다. 현대·기아차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은 “기술적인 결함에 대해 왜 현대차가 솔직히 시인하지 않고 무상 수리와 같은 꼼수를 부리는가”라며 반발하고 있다. 만약 제작 결함으로 리콜이 결정되면 주요 언론을 통해 관련 사실을 알리고 차량 소유주에게는 우편을 통해 결함 사실을 알려야 한다. 반면, 무상 수리는 제조사가 결함을 인정하고 수리하는 것으로 법적 강제성이 없다. 소비자에게 개별적으로 통보되지도 않는다. 소비자 스스로 정비소를 찾아가야만 수리를 받을 수 있다. 또 리콜이 결정되면 운전자가 자기 돈을 들여 수리한 것까지 회사가 보상해 줘야 한다. 무상 수리 10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구형 싼타페의 디젤 고압연료 펌프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0월에 생산된 싼타페에 대해 무상 수리를 진행하고 있다. 무상 수리는 한국소비자원의 권고에 의해 이뤄졌다. 문제의 제품은 자동차 부품 메이커 ‘보쉬’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교체 비용 등 모든 책임은 현대차가 아닌, 보쉬에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10년 이상 된 노후 차량 부품 문제를 결함만으로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보쉬사가 싼타페 사용자에게 무상 수리하는 데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관련 차종에 대해서는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무상 수리를 벌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