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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육성 명목에 국민 건강은 뒷전…식약처 “제도 개선 위해 의견수렴 중”

1980년대 일본 식품업계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특정 성분을 첨가한 식품을 기능성 식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바람이 1990년대 국내로 들어오면서 제품이 쏟아졌다. 안전성과 기능성을 평가하고 유통질서를 관리할 필요가 생긴 정부는 2002년 건강기능식품법을 만들어 2004년부터 시행했다. 이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에 대해 ‘의약품과 같이 질병의 직접적인 치료나 예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거나 생리 기능 활성화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과 교수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며 성립될 수 없는 비논리적 개념”이라며 “모양은 약 형태인데 ‘식품’이라고 표현하니 안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기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포장된 것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지적했다. 
건강을 알약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오랜 연구 결과다. 사진은 건강기능식품을 고르는 소비자 © 시사저널 이종현

제품 승인 위해 없는 항목 만들어

 
식약처는 230여 종의 건강기능식품을 효능에 따라 4가지로 분류했다.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을 ‘질병발생위험감소기능’으로 묶었는데 칼슘(뼈 건강), 비타민D(뼈 건강), 자일리톨(충치 예방) 등 3가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질병 예방은 아니지만 특정 성분의 효능이 다수의 임상시험을 통해 일관되게 나타난 것은 ‘생리활성기능 1등급’으로 분류했다. 제품 포장에 ‘(특정 질병)에 도움을 줌’으로 표기된 것인데, 글루코사민(뼈 건강), 대두이소플라본(뼈 건강), 루테인(눈 건강), 지아잔틴(눈 건강), 가르시니아 캄보지아(체지방 감소), 폴리감마글루탐산(칼슘 흡수 도움), 폴리코사놀(혈관 건강) 등 7가지가 있다. 나머지 220여 가지는 생리활성기능 2등급과 3등급에 속한다. 임상시험 결과가 1편만 있어도 2등급으로 분류되고 건강기능식품 포장에 ‘(특정 질병)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표기할 수 있다. 홍삼, 백수오, 비타민, 오메가-3 지방산, 유산균 등 건강기능식품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없고 실험실 연구 또는 동물실험을 통해 ‘특정 기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3등급으로 지정했다. 계피추출분말, 피나톨분말, 갈락토올리고당 등 30여 가지가 있다. 명승권 교수는 “이 등급만 봐도 얼마나 허술하게 승인을 내줬는지 알 수 있다”며 “건강기능식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임상 결과로 의약품에 준해 전면 재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건강기능식품의 용어와 제도를 폐지하고 뉴트라슈티컬 항목을 의약품 범주에 넣어 엄격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뉴트라슈티컬(nutraceutical)이란 영양(nutrition)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나 그 식품에서 추출한 특정 성분을 뜻한다. 정부가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한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몇 해 전에는 성분이 애매한 약초 혼합물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승인하기 위해 ‘어린이 키 성장’이라는 기능성 항목을 신설하기도 했다. 또 건강기능식품 업체는 ‘식약처 인증’을 강조하며 마치 정부가 효능을 인정한 것인 양 마케팅을 폈다. ‘식약처 인증’이란 정부가 고시한 성분을 사용했으므로 불법 제품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지 효능을 정부가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아이 키 성장이 건강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약초 혼합물을 정부가 승인해 준 데에는 업체의 로비가 있었다”며 “정부가 마구잡이식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승인해 주는 동안 국민 건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비판했다.  

“피해 보상받을 방법 없다”

 평소 간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김아무개씨(61)는 간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을 잡히는 대로 먹었다. 간은 해독 능력을 상실했고 1년 만에 간암으로 발전했다. 식품공학 전문가 최낙언 시아스(식품업체) 이사는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정신적인 위안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효과를 본 셈이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성분을 이것저것 섭취하는 행태에 있다”고 지적했다.김씨와 같은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사례가 늘고 있다. 식약처와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추정 사례 신고 건수는 2010년 95건에서 매년 증가해 2014년 1733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502건이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당뇨병센터 소장은 “의약품은 같은 성분이라도 허가를 받기가 어려운데 건강기능식품은 너무 쉽게 허가를 주는 것은 문제”라며 “버드나무에서 아스피린을 발견한 것처럼 특정 성분을 연구하다 보면 큰 성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건강기능식품 분야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부작용 피해를 봤어도 보상받을 길은 없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건강기능식품과 부작용의 관계를 증명하기가 일반인으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해 건강기능식품 피해 사례가 매년 늘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건강기능식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해 ‘가짜 백수오’ 사태가 터졌다. 그제야 식약처는 관리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질병발생위험감소기능’과 ‘생리활성기능’ 1·2등급을 통합하고 3등급은 없앨 방침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미 승인해 준 제품을 취소하면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홍헌후 식약처 건강기능식품정책과장은 “3등급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폐지될 것 같다”며 “나머지를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해 여러 기관과 논의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진료와 의약품이 필요하다. 이미 건강기능식품이 질병 예방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건강한 사람은 비싼 값을 치르며 예방 차원에서 건강기능식품을 먹을 이유가 없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남들이 좋다는 것을 나도 먹는 것은 무서운 얘기다. 사람마다 체력, 간 대사 능력 등 모든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사람의 몸 상태는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게 정상인데, 계속 나쁘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스트레스가 원인인데 건강기능식품을 먹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조언했다. 의사들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으면 세끼를 챙겨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는 답을 공통으로 내놓는다. 이런 생활습관이 귀찮거나 힘들어서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사람이 많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자신의 건강을 몇 만원짜리 알약으로 유지하려는 꼼수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 환자 가운데 일부는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을 맹신해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며 “몸에 좋다는 주장과 실제로 검증된 것은 다르다. 학계에도 한 해에만 약 1만 가지 성분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실제로 효능을 인정받은 것은 그중에 1개 정도 될까 말까다. 건강기능식품이 약으로 나오지 못한 이유는 효과를 검증할 수 없는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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