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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내 다른 파벌 이끄는 이시바·기시다 등 ‘잠룡’ 꿈틀꿈틀

멀어질 대로 멀어진 한·일 관계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극우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하는 한 지금의 한·일 관계가 달라지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미 아베 총리는 장기 집권 태세에 들어갔다. 지난 9월2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모든 파벌이 그를 지지해 무투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임기는 3년. 불가피한 사정으로 정권이 교체되거나 중도 사퇴하지 않는 이상 이 기간 동안 총리를 맡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아베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일본 정계의 대항마는 없는 것일까.

일본의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지지율이 10%도 넘지 못할 정도로 그야말로 존재감이 없다. 지난 9월19일과 20일 실시된 교도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의 정당 지지율은 32.8%였으나, 민주당은 9.5%에 불과했다. 조사 시기는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이 참의원에서 안보 관련 법안을 강행 처리한 직후였고, 그 역풍이 몰아닥치는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아베의 독주를 막을 대항마는 야당보다는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찾아야 할 형편이다.

일본 중의원에서 아베 총리와 대화 중인 이시바 장관(왼쪽). ⓒ AP연합다니가키 사다카즈(위)와 기시다 후미오. ⓒ EPA연합 ⓒ 시사저널 이종현

“다니가키 총리 되면 韓·中과 관계 좋아질 것”

물론 지금 자민당에서도 아베 1인 체제가 확고하다. 하지만 아베가 재선에 성공하고 내각의 임기가 확정되자 차기 총리 후보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이는 바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상이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만약 정권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그것을 목표로 하겠다.” 잠재적 총리 가능성 1위 후보로 꼽히고 있는 이시바 장관은 9월2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회장을 맡는 ‘이시바파’의 결성을 공식 발표했다. 정식 명칭은  ‘스이게쓰카이(水月會)’. 그가 이끌던 ‘무파벌연락회’의 의원 40여 명 중 19명이 이시바파에 합류했다고 한다. 규모로는 자민당 내 8개 파벌 중 6번째에 해당한다.

2012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당원과 서포터, 국회의원이 참가한 제1차 투표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조직이 없는 등 당내 기반이 약한 탓에 국회의원만으로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아베 총리에게 패했다. 바로 이 같은 경험 때문에 이번에 파벌을 결성한 것이다. 차기 총리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을 중심으로 한 당내 기반을 닦을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평소 이시바 장관은 파벌 조성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때문에 이번에 그가 파벌 결성을 했을 때, 정가와 언론으로부터 ‘언행 불일치’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은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고, 무엇보다 차기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수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비판을 기꺼이 감수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차기 총리 후보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어찌 보면 현직 총리에 대한 도전장으로도 비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예상한 듯 그는 “아베 정권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도울 것”이라며 “결코 딴죽만 거는 집단이 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권이나 총리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쉽다. 때문에 아베 정권은 이시바 장관의 파벌 결성에 은근히 긴장하는 눈치다. 당연히 그에 대한 경계심 또한 풀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곧 있을 내각 개편 때 이시바 장관을 다시 각료로 기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의 일원이 되면 아베 총리를 쉽사리 비판할 수 없게 되는 데다 공무로 바빠 시간상 파벌의 세력 확대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유력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의 유임도 고려하고 있다. 외상 자리에 묶어둠으로써 독자 행보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기시다 외상은 당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기시다파(45명)를 이끌고 있다. 올해 3월에는 기시다파가 누카가파(53명) 의원들과 만나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소속된 호소다파(96명)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37명)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특히 매파인 아베 총리의 강성 외교안보정책에 불만을 가진 소장파 의원들이 온건 비둘기파인 기시다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간사장도 유력한 총재 후보군에 올라 있다. 일본의 유력 주간지 ‘주간포스트’ 7월3일자에 따르면, 일본 전문가들은 차기 총재 후보 1순위로 다니가키를 꼽고 있다. 당내 좌파로 불리는 다니가키는 아베와 분명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만 세력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향 또한 비교적 합리적이면서 성격이 차분하고, 무엇보다 적이 없다는 게 그의 강점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이후 끝없이 추락하자 다니가키가 이끌었던 자민당의 야당 시절이 재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정권교체를 앞두고 아베에게 총재 자리를 내줘야 했던 그에 대한 동정론이 이는 분위기다. 그가 총리가 되면 한국·중국과의 관계도 비약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 게다가 성향이 유사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이 이끄는 니카이파(34명)와 당내 좌파들이 그를 지지할 가능성이 커 실제 총재 선거가 치러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민당 내 보수 원로들도 ‘아베 비판’ 한목소리  

아베 총리의 독주 체제가 길어지면서 그에 대한 당내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무엇보다 강경한 그의 외교안보 노선이 당내에서 불협화음을 낳고 있다. 또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 관련 법안을 위헌 논란 속에서도 강행 처리하는 등 상당히 공격적인 정치를 펼치고 있다. 당내 총재 선거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의원의 출마 움직임에 노골적인 방해 공작을 펼치고, 내각 인사권을 앞세워 만장일치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당내 소수의 목소리마저 힘으로 억누르고 있다.

이 같은 아베의 강성 행보에 당내 보수 우익 원로 정치가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그 대표 격이 바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97) 전 총리다. 그는 해군 장교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인물로서, 평화헌법 개정을 외치며 일본이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온 대표적인 강경 우익 정치인이다. 총리 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처음으로 마찰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나카소네도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8월7일 발매된 월간지 ‘분게이주(文藝春秋)’에 실린 기고문에서 과거 전쟁에서 있었던 일본의 행동은 ‘틀림없는 침략’이며 “부정적인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인근 국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한 야마사키 다쿠(山崎拓·78) 전 자민당 부총재와 가메이 시즈카(龜井?香·78) 전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난 6월12일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베 총리의 안보 관련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7월에는 자민당 원로 정치인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91) 전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 정부가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기로 각의결정한 데 대해 ‘폭거’라고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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