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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교구본사 마곡사 주지 진각 스님 구속 ‘막전막후’
지난해 10월11일 마곡사를 압수 수색한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지청장 백방준)이 12월22일 진각 스님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980년 10월27일 전국 사찰이 계엄군에 의해 짓밟힌 이후 조계종 본사가 압수 수색을 당하거나 본사 주지가 구속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조계종에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마디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진각 스님을 구속하기까지 검찰과 법원은 고민을 거듭했다. 교구 본사 주지를 구속하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전·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정불교실천승가회가 지난해 6월 진각 스님을 대전지검에 고발한 이후 6개월여에 걸쳐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왔다. 관련자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마곡사 본·말사 스님들 수십 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진각 스님이 검찰에 소환된 것만 10회가 넘는다.
마곡사를 압수 수색한 뒤 승려 수십 명이 공주지청을 항의 방문하고, 사건 초기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전화한 적은 있지만 불교계의 반발이 거센 편은 아니었다. 진작부터 진각 스님과 관련한 이런저런 좋지 않은 소문이 충청 지역 불교계는 물론 조계종 총무원에도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구속 영장을 청구하기에 앞서 최근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는 사태가 잇따르자 한때 ‘불구속’ 여부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압수 수색까지 한 마당에 정도를 걷자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영장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공주지청 백방준 지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조계종이나 검찰 상부로부터 어떤 압력도 없었다. 사건의 실체만을 보고 수사했다”라고 말했다.
12월27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는 오후 6시쯤 끝났지만, 법원은 막판까지 구속 여부를 고심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여섯 시간이 지난 밤 12시가 되어서야 영장을 발부했다. 공주지원 이수열 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했다. 사건의 다른 관련자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말사 주지 직 주고 5억6천만원 받아
진각 스님은 배임 수재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마곡사 말사 주지 직을 주는 대가로 승려들로부터 5억6천만원을 받았고, 사찰 토지보상금 2천만원과 국고보조금 8천만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충남 공주 지역 한 사찰 스님의 말대로라면 진작부터 마곡사 관할 사찰들 사이에서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이른바 ‘주지직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각 스님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일부 혐의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본사 주지이기 때문에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지 않느냐. 불구속하고 죄가 드러나면 나중에 구속하면 된다”라고 구속하지 말 것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각 스님의 변호인인 임헌태 변호사는 “대가로 받은 돈은 없다. 3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돌려줬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검찰이 받았다고 주장한 돈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차용한 돈, 다시 돌려준 돈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횡령했다는 돈 8천만원도 요사채를 짓는 데 썼다. 용도를 달리해서 썼을 뿐 개인적으로 착복한 돈은 한 푼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불교계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인 자정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본사 주지 선거 과정이나 각종 사찰 공사 과정 등에서 금품이 오간다는 소문이 워낙 무성했기 때문이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관행화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 불감증이 확산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 한 사찰 주지는 “진각 스님 한 개인의 특별한 경우라면 도려내면 끝이다. 문제는 제2, 제3의 진각 스님이 또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재 조계종의 상황이라는 데 있다. 이제 우리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어 참회하고 자정할 때가 왔다. 종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직선으로 되어 있는 선거 제도 등 ‘돈이 드는’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계종 “자정 능력 강화 계기로 삼겠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공동대표 효림·성관)는 지난 12월28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당사자뿐 아니라 종단 구성원 모두 뼈를 깎는 반성과 참회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합리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성역 없는 세상을 되었음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무기력한 종단의 자정 기능을 되살려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완비하고 일벌백계의 강한 규율을 세워 종단의 위계와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환경연대(상임공동대표 수경)와 대한불교청년회(회장 김익석),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원장 김희욱) 등도 “구속 영장의 청구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참담함을 넘어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의 부끄러움과 참담함이 승풍을 진작시키는 경책이 되고, 청정 가풍을 살리는 양약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불교계 단체들의 잇단 성명 발표는 이번 사태 초입부터 미온적 태도를 보인 조계종 총무원을 움직였다. 12월27일 열린 부장·실장 회의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등 대처에 고민을 거듭했던 조계종 총무원은 12월28일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냈다.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이번 사태를 종단 내부의 자정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종단의 종무직 소임자는 종단에 흠이 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하고 정진해달라’는 내용이다. 조계종 총무원 대변인인 기획실장 승원 스님은 “이번 기회를 조계종 내부를 자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내·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계종은 내심 진각 스님이 주지 직을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혐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현 상황에서 종헌·종법상 강제로 주지 직을 박탈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진각 스님은 구속되기 전 총무원 고위 관계자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 잘 해결될 것이다”라며 큰소리쳤다. 본인이 직접 서울에 올라와 기자들을 상대로 이런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총무원의 한 스님은 “진각 스님이 워낙 자신만만하게 버텨서 사전에 주지 직에서 물러났으면 하는 등의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구속되기 전에만 그가 주지 직을 사퇴했어도 파장이 달랐을 것이다”라며 아쉬워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계종 총무원의 자체적 조사·처리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각 스님과 관련한 구체적 제보가 2006년 6월 총무원에 접수되었지만, 총무원에서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무원에 접수한 제보가 당사자에게 흘러가는 일이 발생했다. 만약 이때 총무원이 철저히 조사했다면 검찰이 마곡사를 압수 수색하거나 진각 스님을 구속하는 사태까지 가지 않고 조용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사태는 불교계 스스로가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