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룡의 교육일기]
삶은 계란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간식으로 ‘삶은 계란’을 먹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어 올해 아홉 살인 큰딸아이 ‘시아’에게 들려주었다.
“삶은 계란이다. 껍질을 남이 깨느냐, 내가 깨느냐에 따라 인생이 1백80°로 달라진다. 남이 껍질을 깨면 계란부침이 되어 남의 밥상에 올라간다. 내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생명이 된다. 자기 삶을 살아가려면 자기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바란다.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잘하기 바란다. 그것도 자기 힘으로. 욕심이 과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아마 인생에서 처음 부딪히는 계란 껍질일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깨고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딸아이가 공부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하고 있다.
‘생물 같은 것 외워서 뭐 해?’ ‘지리 같은 것 알아서 뭐 해?’ ‘역사 알면 어디에 써먹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할 것이다. 부모 자신이 학창 시절에 왜 그런 것을 공부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물이나 지리 같은 암기 과목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이유는 단편적 지식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왜 알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외우는 것은 고역이다. 이런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하려면 ‘퍼즐 맞추기’처럼 큰 틀을 짜주면 된다. 큰 틀 속에서 단편적인 지식은 큰 그림을 맞추어가는 퍼즐 조각이 되고, 공부는 흥미로운 놀이가 된다.
“하루살이는 왜 입이 없는지 아니?”
1년 전 우리 가족은 곤충박물관을 찾았다. 딸아이는 곤충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큰둥했다. 특별수업 시간에 나방은 특징은 어떻고 나비의 특징은 어떻고 하는 설명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재미가 없었나 보다. 생물에 관한 ‘큰 틀’을 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날 들었던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하루살이는 왜 입이 없을까? 곤충이나 동물이 남에게 먹히는 것은 대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이나 먹이를 구할 때야. 하루살이는 약한 곤충이야. 그래서 2년 동안 애벌레로 물 속에서 살다가 어른벌레가 되면 겨우 하루 정도를 사는데, 그 짧은 시간에 먹지도 않고 알 낳는 일만 하다가 죽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이야. 먹을 필요가 없으므로 아예 입을 없애버린 것이지.”
그 뒤에 큰 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생물이 태어나는 목적은 더욱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야. 매미나 호랑나비, 장수풍뎅이는 알을 낳으면 바로 죽어버려. 태어난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지. 사마귀는 아기를 만드는 동안 암컷이 수컷을 먹어버려. 자손들에게 더 많은 영양분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야.”
이런 큰 틀을 알려주면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전해주기에도 편리하다.
“모든 생물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 작고 힘도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귀엽고 기특하고 때로는 존경스러워. 우리가 생물을 공부하는 것은 무수히 많은 생명으로부터 삶의 목적을 달성하는 각자의 방법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란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손을 많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지만.”
딸아이는 다시 생물에 대한 관심을 되찾았다. 옆에서 같이 듣던 아내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누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면 생물 시험 점수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