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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택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장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점집에서 범인의 행방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냥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실제로 기자 주변에도 점쟁이에게 길을 묻는 경찰이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찰은 잠복하고, 발로 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하지만 달라졌다. 요즘 경찰은 ‘과학 수사’라는 말을 수식어처럼 달고 다닌다.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에서 경찰은 DNA 분석으로 범인을 파악해 과학 수사의 중요성과 한국 과학 수사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잠깐 쉬었다 가거나 은퇴를 준비하던 부서였던 경찰청 수사국 과학수사센터(센터장 이상원 총경)는 최고 정예 요원의 집합소가 되었다. 과학 수사 요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증거분석계의 신경택 경장(34)이 두드러진다. 살인 사건 현장에서 감식을 담당하던 신경장은 지문 감식을 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야외 현장에서 바람이 불면 사방으로 지문 감식 가루가 날리고, 비가 오면 가루가 뭉쳐져 애를 먹었다. 게다가 현장 감식이 끝나면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40년째 써온 수입품 분말이 몸에 해로운 것또한 분명했다. 신경장은 “콧구멍까지 검게 변한 동료 요원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몸에 해롭지 않은 지문 인식 분말을 만들기 위해 매달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쉬는 날에도 연구·개발에 전념하던 신경장 눈에 여직원이 쓰는 화장품 콤팩트 파우더가 들어왔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화장품 회사에서는 제작을 거부했다. 화장품 공장을 돌아다닌 지 6개월. 신경장은 활석과 운모를 주원료로 혼합한 콤팩트형 지문 분말을 만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지난 2월 시범 사용에서 현직 과학 수사 요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전 경찰서에 보급해 사용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신경장은 지난 7월 경찰청에서 특별상을 탔고, 9월에는 공무원 중앙제안 심사 과학기술 분야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1996년 경찰청 과학수사과(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촬영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신경장은 2000년 특채되었다. 이후 휴대용 형광 물질 인식기를 만들면서 과학 수사 장비 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새로운 과학 수사 장비 두 개를 더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신경택 경장의 사전에 ‘살인의 추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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