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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문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정치적 차원의 의미망에서 아예 벗어나기란 지극히 어렵다. 또 오늘의 정치 상황이 정쟁과 추문과 야만으로 지독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해도 이 우여곡절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전개 방향이 결정되어 간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 시대의 정치를 함부로 대할 수만도 없다. 그런 뜻에서 필자는 이문열씨나 ‘안티 조선’ 사람들의 ‘열정’을 어느 만큼은 이해한다.

그러나 문학이 정치로 환원되고 말 뿐이라면 사람이 문학이라는 영역을 따로 설정하고 그것에 독자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정치만으로는 배가 고파서 문학과 예술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정치의 핵심적 요소는 집단적 힘들과 그 힘들을 떠받치는 논리들 사이의 대결, 긴장, 타협 같은 것들이다. 국회의사당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중계되는 떠들썩한 정쟁은 그것이 아무리 추하게 보여도 결국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 자신의 이해를 대변해줄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에 다름 아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빚어진 욕망과 사랑, 증오가 바로 정치의 원동력이다.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그 자신이 올바르다는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우리의 정치사적 경험이 알려주듯이 완전한 올바름이란 없다. 인터넷에 올려진 어떤 발언이나 글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댓글로 올리곤 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 자기 자신을 품위 있게 지켜주는 모든 것 대신에 증오라는 정치적 파토스를 발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순간 그는 정치적 ‘동물’이 된다. 이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러한 어두운 열정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금방 사용한 어두운 열정이라는 말은 이문열씨의 오래된 용어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가 그의 최근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바로 그 어두운 열정이었다. 소설은 허구라는 의장 없이 성립하지 않기에 작가는 언제나 작품 속 인물들의 주의·주장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독자나 비평가 역시 분석과 종합과 추론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을 간추리고 그 본의를 추단할 권리가 있다. <호모 엑세쿠탄스>를 써나간 실질적 주체는 어두운 정치적 파토스에 사로잡힌 작가이지 정치와는 다른 깊이와 차원을 추구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완전한 올바름이란 없다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하면서 필자가 겪는 괴로움 중의 하나는 우리 작가들 가운데 개체적인 자아와 미와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사람이 충분치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현대의 한국 문학은 너무 많은 정치성에 의해 침윤되어 있다. 이 점에서 한국 문학은 아직 배가 고프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작가들은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 같은 정치적 상황을 통과하면서도 보석 같은 문학, 문학다운 문학을 창출해왔다. 또 그 시대에는 정치적 문학조차도 정치적이지 않은 어떤 인간학을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모 엑세쿠탄스>는 이 작가의 최근 작품들이 늘 그러했듯이 한국 문학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 같다. 낡고 거친 문장과 고정되고 편향된 관념, 진부한 알레고리는 읽는 사람을 그야말로 질식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과 인생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있다. 작가 자신과 정치적 이상이 다른 정파와 지식인과 이상가들을 향해 발산되는 저 어두운 열정의 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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