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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994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네오 파시스트들까지를 망라한 우익 연정으로 처음 이탈리아 총리가 됐을 때, 그 나라의 어느 신문은 아이러니로 그득 찬 칼럼을 하나 내보냈다. 취지는 대략 이랬다.

“나는 베를루스코니가 지은 아파트에 산다. 집안의 전자 제품들은 죄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할인 매장에서 산 것들이다.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베를루스코니가 경영하는 방송사들뿐이다. 그 방송사들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주인 ‘AC 밀란’의 축구 경기를 줄기차게 보여준다. 텔레비전 보기가 지겨워 영화관을 찾자니 온통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영화관뿐이고, 그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제작한 것들뿐이다. 서점에는 베를루스코니 계열 출판사들의 잡지와 단행본이 넘쳐난다. 내가 사용하는 것 가운데 베를루스코니 것 아닌 게 뭘까? 아, 이 몸뚱어리 하나는 내 것이군.”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하기 전부터, 이탈리아는 이미 ‘베를루스코니 공화국’이라 불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의 삶 자체가 그 나라 최고 부자 베를루스코니의 경제적·문화적 망 바깥에서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베를루스코니가 마침내 정치 권력까지 움켜쥐게 된 것이다. 그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베를루스코니가 마침내 국가가 되었다. 적잖은 이탈리아인들이 오래도록 꿈꾸던 공산혁명이 성취됐다. 내 몸뚱이 말고는 사유재산이 없잖아. 모두가 국가의 것이니. 베를루스코니 서기장 동지 만세!”

이탈리아 사회에 드리워진 베를루스코니의 그림자와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삼성그룹의 그림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짙은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얼핏, 삼성 쪽이 더 옅어 보이는 측면이 둘 있다. 우선, 삼성은 1980년 언론통폐합 때 공중파 방송(TBC)을 잃은 뒤 이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결국 시간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삼성은 신문·출판·인터넷 시장을, 꼭 직접적 방식이 아니더라도, 움켜쥐고 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와 흡사

둘째, 삼성은 베를루스코니와 달리 정치 권력을 아직 장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은 삼성에 저항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저항하지 않는다. 행정부에도 입법부에도 사법부에도 삼성 인맥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베를루스코니처럼 요란스럽게, 반대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정치 권력을 움켜쥐지 않는다. 삼성은 정치 권력의 뒤에 있거나 거기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삼성이 소유한 공중파 방송이 없다는 것과 이건희씨 집안의 누군가가 아직 청와대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삼성의 ‘한국 경영’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밖의 점에서, 삼성은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를 쥐락펴락해온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내 방만 해도 삼성 라벨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내 ‘물질적 상징적 자부심’을 북돋우고 있다. 재벌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오직 삼성만이 주요 프로 스포츠의 타이틀 스폰서고, 오직 삼성만이 한국 자본주의를 대표한다.

예찬자들이 내세우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다. 그리고 그 경쟁은 ‘규칙을 따르는 경쟁’이다. 그 경쟁의 대척 개념이 독점이다. 그런데 지금 삼성은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경쟁’에, ‘규칙을 따르는 경쟁’에 우호적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 삼성이 ‘규칙을 따르는 경쟁’에 비우호적이라면, 삼성의 존재는 한국 자본주의의 앞날을 위해서도 불길하다. 서양 격언에 따르면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그리고 여기서 권력은 꼭 좁은 의미의 제도적 정치 권력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은 제 몸뚱어리 말고는 온통 삼성 것인 사회 쪽으로 조금씩 발길을 내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른바 ‘X-파일 보도 사건’에서 보듯, 그 제 몸뚱어리마저 ‘삼성당’의 뜻에 어긋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사회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부드러운 공산혁명’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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