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 <책 사냥꾼: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수집의 모든 것 ‘고백’
애서가, 장서가, 서치(書癡), 서적광. 이런 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책 읽기보다 책 그 자체를 끔찍이 아낀다는 데 있다. 물론 책 읽기와 책 자체를 모두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수집하는 목적은 순전히 책을 손에 넣는 그 순간에 느끼는 전율 때문이며, 이는 물고기를 낚는 순간의 손맛과 같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 존 벡스터도 그렇다. 1950년 호주 벽지에서 자라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대학강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한 그는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중독자이기도 했다.
1978년 런던의 벼룩시장에서 그레이엄 그린의 희귀본 어린이 책 <작은 말이 끄는 마차>를 단돈 5펜스에 구입한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그레이엄 그린의 책이라면 불원천리하고 돌아다니며 사 모았다. 사 모은 책들을 알파벳 순서로 혹은 출간 연대 순서로 바꾸어 배치하면서 감상(독서가 아니다)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그레이엄 그린 중독에서 벗어나 책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러나 허전한 서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달래줄 것은 역시 책 밖에 없었으니, 미국 작가와 삽화가들의 책을 수집하기도 하고, 에로물 전문 올랭피아 출판사의 책을 집중 수집하기도 했다.
런던 곳곳을 뒤지고 다니던 시절 벡스터는 이디시어(語)중동부 유럽 유대인들이 주로 쓰던 언어로 히브리 문자로 적는다)로 시를 쓰는 시인 도라 테이텔보임의 집(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지하실에서 캐비닛을 발견했다. 캐비닛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같은 대단한 작가들에게 기증받은 책을 비롯한 희귀본들로 가득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누구보다도 먼저 보물을 발견한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입심 좋은 수집 이야기 가득해
벡스터가 말하는 책 사냥꾼의 진화 단계는 이렇다.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페이퍼백 판본을 읽는다. 그러다가 책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하드 커버 판본을 구입하고, 그 다음엔 초판본을, 이어서 저자가 서명한 초판본을 산다. 여기에 맛을 들이면 초판본 전 단계인 교정본을, 그 다음에는 아예 저자가 직접 쓴 육필 원고를 수집한다.’
이 가운데 교정본은 식자공이 원고를 활자로 조판하여 인쇄 형태로 만든 최초의 판본이다. 교정본이 나오면 식자공이나 작가가 원고와 대조하며 잘못된 부분을 여백에 표시한다. 오식(誤植)이 많거나 작가가 까다로우면 교정본 여백이 어지러워질 것은 당연지사. 그런 교정본이 더 대접받는다. 희귀본이 되는 까닭도 가지각색. 존 파울스의 소설 <콜렉터>의 일부 초판본은 표지가 검은 천이지만 서점에 내놓을 때 갈색 천으로 바꾸었다. 극히 일부가 유통된 검은 천 표지 책은 갈색 천 표지 책보다 스무 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
‘책중독자의 수다’라는 부제목대로 책과 책 수집에 관한 입심 좋은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책이다. 그 좋은 입심을 제대로 살린 번역자가 고맙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필립 블롬의 <수집: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와 함께 읽으면 수집이라는 인간 활동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괜한 궁금증 하나 동녘출판사 편집부에 유달리 수집에 관심이 많은 분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