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어린이 음악회> . 국악원 토요 생공연 성황...국악 대중화 가능성 보여

 2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KBS홀. 1천7백여 객석에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연주회는 다른 공연과는 여러 면에서 색달라 보였다. 객석을 가득 매운 이들은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였고, 그것도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대부분이었다.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평소 공연장에 들어올 수 없었던 이들은, 무대 위에서 펼처지는 공연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사회자가 공연을 소개할 때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으나, 공연이 시작되자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 주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연의 내용, 전통 널뛰기에 사물놀이 . 모듬 북의만남이 이어지고, 정악 . 무고가 등장하는가 하면 KBS국악관현악단의 <신내림>(박볌훈 작곡)연주가 뒤를 따랐다. 국악 연주회였던 것이다. ‘신기하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어린이들은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같은 날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립국악원의 <토요 상설 국악 공연>이올해 들어 처음 열렸다. 기악합주<함넌지곡>, 가곡 <태평가>, 단소 독주 <청성곡> 같은 다소 어려운 레퍼토리가 공연도는데도 8백석 가운데 6백여 석이 청종으로 채워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객석이 절반도 차지 않던 공연이었다.
 
국악 공연, 변한 만큰 환영 받는다.
 두 공연은 요즘 국악 공연이 확연하게변하고, 변한 만큼 대중으로부터 환영받는 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동안 한국 전통음악은 서양 음악과 대중 음악의 위세에 밀려 언제나 대중의 관심권 밖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국악은 ‘재미있다’ ‘고급스럽다’ ‘감동적ㅇ다’가 아니라, ‘지루하다’ ‘어렵다’ ‘구태의연하다’는 이미지를 지닌 장르였다.

KBS<어린이 음악회> <토요 상설 국악 공연>을 비롯한 국립국악원의 여러 기획물들은, 국악이지닌 ‘전통적인 이미지’를 깨며 대중으로부터 각광받는 공연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공짜표’를 아무리 뿌려도 객석이 텅텅비던 것과는 반대로 관객이 표를 사서 열성적으로 국악 공을 찾는다. <어린이 음악회>입장권은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발매 당일 천 장 가까이 팔려 나가며, 이공연을 보려고 대천. 청주 같은 지방에서 오는 이들도 많다.

 두 공연이 성공을 거두며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의 취향과 기호에 맞게 ‘국악 잔치상’을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음악회>가 시작된 것은 재작년. “처음에는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고 만화영화 주제가를 국악기로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별의미가 없었다. 이 공연의 목적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국악을 접촉하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 음악회>를 제작하는 신현숙 PD는 같은 이름으로 진행하는 양악에 국악이 자꾸 밀리는 데다. ‘국악은 안된다’는 일반적인 인식에도 자존심이 상했었노라고 말했다.

 <어린이 음악회>가 세운 전략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기’, 진행자와 지휘자로 젊은 국악인김용우 .  원일씨 (84쪽 상자 기사 참조)를 영입했고 그들과 더불어 프로그램을 짰다. 지난해 1일부터 두달에 한번 (공연은 하루에2회) 열리는 <어린이 음악회>는 내용이 있으면서도 어린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여는 판에서부터 관객의 관심을 끈다. ‘줄광대 놀음’ 명인 김대균씨가 줄을 타고, 타악 그룹 공명이 신명나는 타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지난달 공영에는 백운초등하교 얼ㄴ이들이 나와 공중을 붕붕 날면서 연출하는 널뛰기를 보여 주었다. 처음부터 어린이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이다.

다음은, 오랜 시간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특성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잘게 쪼갠다. 보통  20분이 넘게 연주하는 정악은 8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정적인 음악에는 화려한 의상을 한 전통 춤을 곁들여 볼거리를 제공했다. 바구니에 공을 넣으면 상으로 꽃을 주고, 넣지 못하면 별로 얼굴에 검정 칠을 하는 <포구락> 같은 전통 놀이도 발굴해 무대에 올렸다.

 마지막은, 어린이 연주자를 반드시무대에 세운다. 객석의 어린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공연자와 감상자가 어우러지는 국악의 특성을 활용해 장단을 가르치며 함께 노래하고, 때로는 객석의 어린이들을 무대에 불러올려 춤을 함께 추기도 한다.

 “국악 자체가 감상자에게 열린 음악이기 때문에 공연을 망칠 정도가 아니라면 어린이들이 떠들 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린이들에게 맞게 프로그램을 진행하자 객석의 반응이 금세 달라졌다”라고 서현숙 PD는 말했다.

 <어린이 음악회>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었다면, 국립국악원의 <토요 상설 국악 공연>은 일반 대중의 수준을 반영한 음악회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 음악을 보존. 연구하고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기능을 하는 국악의 메카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국ㄹㅂ국악원을 찾는 대중의 발길은 뜸했다. 토요.화요.목요 상설 공연과 전속 단체의 정기 공연이 열리기는 했으나, 소수 전문가나 국악 마니아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이 국악 대중화에 구체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지난해 4월 윤미용 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이다. 마을버스를 유치하고 웹사이트를 활용하는가하면, 지하철 역사에 국악공연 포스터를 붙이는 따위 공격적인 기획. 홍보 전략은 올해부터 그 성과가 나타났다.

맛을 알면 깊이를 찾게 된다.
 대중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대중이 맛이게 먹을 수 있는 밥상’을 차렸기 때문이다. <토요 상설 국악 공연>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연주ㅚ이다.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다양하고 쉽게 만들어다. 50~60분짜리 산조는 10분 이내로 연주하고, 정악과 민속 음악들을 한 무대에 올려 1시간 30분 동안 여덟 가지 공연을 감상하게 했다. ‘맛들이기가 어렵지, 맛을 알면 반드시 깊이를 찾게 된다’는 확신에서나 온 고객 서비스인 셈이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실제로 ‘관객’을 ‘고객’이라고 부른다.)

 국악 대중화는 전통 음악이 안고 있는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 교육에서 양악에 밀리는 바람에 대중이 국악과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던 데다, 국악계에서는 대중과 만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이 음악회>와 <토요 상설 국악 공연>은 기획을 하기에 따라 국악 대중화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연으로 평가할 만하다. 지금까지 대중이 국악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국악이 대중을 멀리했음을 입증하는 전범인 셈이다.
成宇濟 기자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