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록 소규모 학술 모임이지만, 한국종교연구회는 인문학계에서 ‘타난한연구 역량’을 인정 받는 단체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명성을 얻기까지 한종연은 10년 넘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이모임의 회장인 장석만 박사는 회관다. 한종연이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고난의 가시밭 길이었다는 것이다.  고난의 시발점은 이 모임의 이름에서 말미암았다. 종교 연구라면 으레 특정 종교 집단을 겨냥해 불순한 의도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던 당시현실에서 오해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잘 알고 지내는동료 학인들로 부터도 ‘웬 종교 연구냐’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초창기 내걸었던 진보의깃발 때문에 이들은 경찰의 감시로부터도 자유로울 수없었다.더욱이 학계에 서는 은사와 선배 교수들 사이에서 불순한 학생 모임으로 낙인 찍혀, 이모임에 참여하는일부 학생들에게 근족령이 내려지고 ‘이를 어길 경우, 학교에서 배겨나지 못할것’이라는 엄포가 가해지기도 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보잘것없는 규모로 출발했던 이 모임이 10년 넘게 장수할수있었던 것도 바로 이같은 ‘핍박’ 때문이었다는 것이 한종연 사람들의 설명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학교에서도 내쫒겼다는 공동체 의식 덕분에 오히려 결속력이 더 단단해졌다”라고 장박사는 말한다.  한종연은 올해를 제2도약기로 삼고 있다. 오랜시련에도 불구하고 이모임에서 실력을 닦은 상당수 회원이 올해 박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연구자의 길로 접어든다. 한종연은 이를 계기로 학회지 발간 작업을 강화하고, 대중 강연 자리를 마련할 것도 계획하는 등연구모임으로서 좀더 성숙한 면모를 보이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한종연은 현재의자신감에 지난날의 외로운 시절이 잊힐수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경게하고 있다. “그동안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공부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건져 올릴 수 있었던 삶의 의미였다.”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