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찰 조직이 잇단 불상사로 와해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 경찰청은 지난12월말 니가타 현 소녀 유괴 감금 사건의 책임을물어고바야시
게이지(小林幸二)니가타 현 경찰본부장(경찰청장)과 나카다 요사이키(中田好昭)간토지구 경찰국장을 문책 해임했다.
유고 감금 사건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경찰 총수인 다나카 세쓰오(田中節夫)경찰청 장관이 지난 3월2일
국가공안위원회로부터 이들에 대한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봉급의 5%를 한달간 감봉당하는 징계 처분을 받아다. 경찰청 장관이 재임 중의
불상사로 징계 처분을 받은 것은 일본경찰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야당 “국가공안위원장 경질하라” 정치 공세 경찰 간부의 징계에 소극적이었던 국가 공안위원회에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이
기관이 불상사를 일으킨 경찰 간부들을 징계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경찰청의 ‘자기식구 봐주기’식 처분을 용인함으로써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된것이다. 야당들은 자민당 소속인 호리 고스케(保利?輔)국가공안위원장을 경질하라며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본 경찰이 이처럼 여론의 혹독한 지탄을 받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발단은 지난 1월28일 니가타현 가시와타키(柏?)시에서 9년
2개월 전 실종된 한 소녀가 발견되면서부터 이다.이소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0년11월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다가 실종되었다.
범인은가은현에 살고 있는 사토(당시 28세)라는 남성인데, 소녀를 집으로 끌고가 무려9년 2개월 동안이나 2층에 감금해 왔다.
일본의 범죄 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장기 유괴 감금 사건은 정신 착란 증세를봉ㄴ 사토를 집으로 찾아온 보건소 직원들에
의해 처음 발각되었다. 가시와자키 보건소 직원들은 사토의 집 2층방 침낭에 숨어 있던 소녀를 발견하고 신원을 확인해 본 결과 그가9년2개월 전
이웃 도시에서 행방불명된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가타 현 경찰은 사건이 터진 1월28일 저녁 엉뚱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소녀를 처음 발견한 것은 가시와자키
경찰서 소곡 경찰관이며, 장소도 사토가 입원한 병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가시와자키 보건소측의 항의로 니가타 현 경찰의 발표가 엉터리라는 것이 곧 탄로났다. 보건소 직원들이 소녀를 발견하고
경찰에 출동을 요청했으나 니가타 현 경찰은 바쁘다고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또 보건소측으로부터 소녀의 이름과 주소를 통보 받은 후에야 경찰관
3명이 사토의 집이 아니라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소녀를 보호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4년 전 사토의 모친이 아들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가시와
자키 경찰에 상담했으나 문전 박대를 받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니가타 현 경찰의 추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건 당일 니가타 현 경찰 조직의 책임자인 고바야시 본부장이 놀랍게도 온천장에서
주연을 베풀고 한가로이 마작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것도 니가타 현 경찰을 감찰하러 나온 감찰책임자와 함께.
경찰청은 지난해 가나가와 현 경찰의 비리가 불거지자 각 지방 경찰청에 대한 특별 감찰을 실시해 왔다. 니가타 현 경찰은 간토
지구 경찰청 소속인데, 사건당일은 니가타 현 경찰에 대한 감찰이 실시된 날이었다.
그러나 감찰 책임자인 간토 지구 경찰청 나카다 국장은 니가타 현 경찰본부 감찰에는 입회하지도 않고, 경찰이 예약해 놓은 온천장으로
직행했다.
니가타 현 경찰 총수인 고바야시 본부장은 나카다 국장을 접대하기 위해 온천장으로 가다가 소녀 유괴 감금 사건이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온천장에 걸려온 니가타 현 형사부장의 전화 보고를 듣고 자세한 경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소녀 유괴 감금 사건에 대한 허위 발표를
승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바야시 본부장은 사건 직후 온천장에 전화와 팩스가 완비되어 있어 온천장에서도 수사를 지휘 할 수 있다고 판단해 경찰본부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자정 무렵까지 마작을 즐기느라고 긴박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걱정이 된 나카다 국장이
본부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으나, 이를 무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청은 나가타 현 경찰에 대한 특별 조사 결과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고바야시 본부장은 사임시키면서
봉급의 20%를 한달간 감봉하는 징계 처분을 내렸다. 나카다 국장에 대해서는 ‘잣자’라는 이유로 징계조처를 내리자 않고 상미하는 것으로 미봉하려
했다. 여기에 2월29일자로 사임한 고바야시 본부장이 받게 될 퇴직금은 약 3천2백만 엔, 나카다 국장은 약 3천8백만 엔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련의 행위는 직무 유기가 분명하다. 직무 유기라면 퇴직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는 면직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가벼운 처벌을
받은 데 이어 엄청난 퇴직금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이 들끓고, 오부치 총리마저 ‘언어도단’이라고 혀를 차기에 이르렀다.
“경찰 개혁은 인사 제도에 달려 있다” 이처럼 경찰 간부들의 꼴불견 작태가 꼬리를 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토
미치오(佐?道夫)전 삿포로 고검장(현 참의원 의원)은 경찰 간부의 인사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찰관 수는 현재 22만 명에 이른다. 이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국가공무원 1종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한 ‘캐리어 조’라고 불리는
5백20명이다. 경찰의 중요 포스트도 이들이 독점하고 있다. 전국 49개 경찰청 중 고시 출신이 아닌 ‘논 캐리어 조’가 경찰청장 직에 등요된
곳은 두 곳뿐이다.
사토 의원은 “캐리어 조가 능력 검증 없이 자동으로 승징하는 현재의 인사 제도를 개혁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하면서, 경찰청에
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캐리어 조’에 대한 위기 관리 . 지휘 능력등을 평가하는 승진 심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공 서열과 종신 고용으로 상징되던 일본 사회 곳곳에서 지금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빅 뱅’이 진행되고 있다. 잇단 불상사에
따라 일본의 경찰조직, 나아가 관료 조직에도 빅뱅의 종이 우려 퍼지는 것이 이제
시간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