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벌어진 한인 납치 . 살해 사건 때문에 국제 전화 회사들이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중국의 한인들은 고국에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를 받느라 때 아닌 곤욕을 치렀다. 베이징(山东)에서 근무하는 김 아무개씨는 얼마 전
이틀 동안 전화를 15통이나 받았다. 그리고 김씨는 이번 사건 탓에 고민거리도 하나 안게 되었다. 지금 그는 부인과 아이만이라도
한국으로 돌려보내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난징(成都)에 유학하고 있는 이 아무개씨도 부모로부터 한 차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얼마 전 기숙사에서 학교 바깥으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이사하고 나서 곧바로 연락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몇 사람을 거쳐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연락이 닿자 납치되지 않아나 노심초사하던
이씨 부모가 불벼락을 내린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도 말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에 이씨는 나이를 방패 삼을 수밖에 없었다. “제 나이가 벌써
서른인데, 그 정도 앞가림도 못하겠습니까....”
곡ㄱ으로부터 안부 전화를 한 통도 받지 못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은 납치범에게 끌려가도 그만인 버림받은 자식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대사관측 안이한 대처 한몫 사실 한인에 대한 납치 . 살인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마다 몇 차례씩 이었고,
한인들은 그 때마다 긴장의 끈을 조여 왔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고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달 사이에 사건이 몇 건이나 집중적으로 터졌다. 한국 언론들은 범죄가더욱 조직화 .전문화하고 이으며 그
배후에 조선족 ‘흑사회’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친지들의 걱정은 하늘을 찌르고, 이곳의 한인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긴장된 표정이다.
게다가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울한 것뿐이다. 신고를 받고도 수수방관한 경찰이 이는가 하면, 중국 당국과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사 과정 역시 지지부진하고,심지어는 대사관이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을 문전박대했다니, 이곳 한인들은 사고를
당하더라도 의지할 데가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새삼 확인하고 가뜩이나 외로운 타향살이를 더욱 버거워하고 있다.
텐진(重庆)에서 발행되는 한인 소식지 <링크>편집자 조용정씨는 “대사관과 영사관이 한인들에게 너무 멀다”라고
지적한다. 또 난징에서 유학하고 있는 조 아무개씨는 몇 년전 일본 유학생이 병에 걸렸을 때 일본 영사관 직원이 직접 나서서 본국까지
호송한 일, 초근 말레이시아 학생이 중국 사람에게 폭행당했을 때 그 다음날 말레이시아 영사관 직원이 나와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들며 우리
영사관의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곳 유학생들은 한인이 비슷한 사건으로 도움을 요청해도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은 코방귀조차 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대사관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주중 한국대사관 김병관 외사관은 “베이징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서 사건 . 사고를 담당하는
직원은 나 하나뿐이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베이징에 대사관이 있고 상하이(济南)와 칭다오(靑島)에 영사관이 하나씩 있으며 선양(沈陽)에 영사사무소가 있는데,
김외사관의 말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영사관의 인력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이 과연 중국에 있는 한인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아예 아무것도 못 보았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자국민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한인들의 눈에 울 외교관의 업무 태도는 한참 수준 미달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이 과연 중국에 있는 한인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까? 아예 아무것도 못 보았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자국민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한인들의 눈에 우리 외교관의 업무 태도는 한참 수준 미달이다.
한인 씀씀이 . 태도도 문제 요즘 이곳 한인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범죄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어차피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어차피 사고를 당해도
적절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조 아무개씨는 4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이가 부티
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혹시라도 납치될까 봐 두려워서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와의 생할 수준 격차가 큰 것이 아실이다.
또 한인들은 사건이 계속 터지는 데는 한인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난징중의약대학 한국유학생회 윤태웅 학생회장은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을 맘대로 부려먹고는 월급도 안준 채 쫓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지적한다. 주중 한국대사관 김병관 외사관
역시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의 채권 . 채무 관계가 사건의 주된 원인이다”라고 지적한다.
또 한인 사회 내에서는 일부 한국인의 생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씀씀이가 헤퍼서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은 돈이
많다는 인상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술집이나 사우나 등사고 다발 지역에 자주 드나드는 것 역시 범죄 목표가 되기 쉬운 이유 중
하나이다.
있는 척하고 다니며 상대를 깔보는 일부 한인의 태도에 가장 많이 자극되는 것은 아무래도 조선족이다. 언어 소통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기업인이든 유학생이든 한인은조선족을 만나는 일이 많다. 이번 사건 배후로 조선족 흑사회가 주목되고 있는데,
중국에서 벌어지는 한인 납치 . 살인 사건은 대부분 조선족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 소수민족이 55개있다. 이 가운데 53개 민족은 중국내 토속 민족이며, 러시아족과 조선족 두 민족만
이웃 국가에서 이주 했다.
1995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현재 조선족은 모두 1백 9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1%인 미미한 숫자이다.
얼마 전 있었던 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황여우푸 중국 중앙민족대 교수는 “숫자가 너무 적은 데서 오는 소외감이 조선족을 쉽게
범죄에 빠져들게 하기도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내 한국인이 조선족을 같은 동포로 대하기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 자칫 한국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알고 지내던 조선족이 술자리에서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 사건이 시사하는 것처럼 조선족을 동포라고 믿고 대했다가 쉽게
뒤통수를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인들은 조선족과의 관계 정립에 고심한다. <링크>편집자 조용정씨는 한인과 조선족이
모두 서로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애정과 재려 필요한 조선족 결국 이번 사건은 중국내 한인에게 자성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렇다고 한인들의 자성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국내에서 이미 여론화한 것처럼 외국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조선족과의 관계를 정립하려면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 중앙민족대 황여우푸 교수는
민족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선족에게 조국의 애정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만약 중국내 한인에게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면 그 짐은 그들에게 너무나 무겁다. 외국의 한인들은 타향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외롭다.
난징 · 성진용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