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시내의 교통체증은 성미급한 외국인들에게는 이 열대국가의 무더위 못지 않게 짜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
태국인들은 늘 태평한 모습이다. 방콕의 도로면적은 전체 도시면적의 4%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1백만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몰려다니고 행인들은
아무데서나 늠름하게 차도를 건너니 교통체증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콕시내 실롬거리에 있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RTA) 방콕 무역관 사무실을 떠나 시대의 교통지옥을 겨우 벗어났다. 해변 휴양지
파타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한동안 타고 달리다가 사뭇파칸道의 삼릉지구에 들어서면서 다시 길이 막혔다. 사뭇파칸의 테파락 거리의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 자리잡은 한국 투자기업 삼미 사운드 테크社에 도달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으나 1월의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다.
서울에 본사를 둔 삼미기업이 100% 출자한 이곳 현지법인의 태표는 朴炯宇(45)씨. 87년 12월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88년
3월부터 소구경 스피커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 회사는 제품을 100% 수출하기 때문에 합작이 아닌 단독투자가 가능했다고 한다. 수출지역은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다. 현재의 생산량은 연 6백50만개이나 증축공사가 끝나면 오늘 3월부터는 연 1천4백만개로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공장안에는 푸른색 제복을 입은 태국의 젊은 공원들이 3개의 조립라인에 가지런히 앉아 움직이는 벨트를 타고 오는 부품들을 조립하기
위해 바쁜 손놀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곳의 태국인 직원들은 모두 1백66명으로 금속자재를 1차적으로 처리하는 준비공정, 기초조립, 최종조립,
검사, 포장하는 일들을 나누어 맡고 있다. 임금은 태국 공원들에게는 수당을 포함해 월1백달러 정도가 지급된다. 임금은 한국근로자들의 3분의 1
정도인데 비해 생산성은 한국근로자의 92%에 달한다고 박씨는 말했다. 한국의 숙련기능공 한 사람이 소구경 스피커를 하루 2백50개 생산하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2백30개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최근 2,3년 동안 원화가치의 절상과 임금인상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해외투자로 살길을 찾기 시작한 업체는 비단 삼미기업만은
아니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의 경우 동남아지역의 투자진출에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태국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어났다. 태국투자청(BOI)이
투자신청을 기준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태국에 대한 투자건수는 87년 16건, 88년 40건으로 급증했고,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34건으로 한국기업들의 태국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증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지인 이해가 사업 성공의 비결” 그러면 한국기업들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8월 동남아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50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투자동기를
동남아지역의 저임금 활용이라고 답변한 업체가 70%인 35개 업체에 달했고 현지의 내수시장 개척이 7개, 제3국에의 우회수출이 3개 업체였다.
진출 대상국가로는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각각 20개, 19개 업체로 가장 많았고, 태국의 경우 특히 전기 · 전자업종의 업체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이처럼 한국기업들의 동남아 투자진출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지고 있지만 이 기업들 모두가 실제로 투자하는 단계에까지 나가는 것은
아니다. 방콕의 변두리 프라카농지구에서 제너럴 삭스라는 양말공장을 경여하고 있는 李正雨(45)씨는 이렇게 말한다. “원화절상과 인건비상승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태국에 찾아오는 기업인들이 많지만 실제로 투자하는 것은 그중에 1%도 안될 겁니다. 외국에 나오면 금방 노다지라도 캘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여기도 힘들어요.”
이씨는 73년에 태국에 와서 한 · 태합작의 다라밋 양말공장에서 2년 동안 경험을 쌓은 뒤 80년에 기계 1대, 직원 네댓명으로
현재의 회사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인들이 태국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몇분의 1밖에 안된다거나 태국사람들이 몸집도 작고 가무잡잡하다고
내려다보며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의 적수공권으로 시작해 현재 부지 1천평의 공장에
직원 2백명을 거느리고 한달에 양말 2만타를 생산하는 규모로 끌어올린 그의 수완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는 귀담을 만한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조급한 마음에서 계획을 일단 세워놓으면 밀어붙이곤 했는데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고민 끝에
태국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태국근로자들의 능력이 없어 잘못되는 것이 아니니 너무 독촉말고 조용히 얘기해보라는 충고를 했다. 그후 그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혼자 삭이고 열흘 뒤쯤 웃는 얼굴로 근로자들에게 지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몇배의 효과가 났습니다. 종업원들이 지시에 잘
따라주는 겁니다. 사업의 비결은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뭇파간道의 방프리 지역에 있는 T.D.S.화학은 한국의 모기업 동성화학공업주식회사가 51%, 태국 파트너가 49%를 투자한
합작기업이다. 인근에는 공단조성 작업이 한창이어서 여기저기 트랙터로 예전의 농지를 뒤엎고 있었고, 도로만 황급히 넓혀놓아 개천 위에 놓인 옛날
그대로의 좁은 다리가 교통의 병목현상을 만들고 있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폰씨는 10년전만 해도 이곳의 땅값은 1라이(약4백80평)에 4만바트
정도였으나 지금은 1백만바트나 된다고 했다.
60만평의 한국공단 2월에 착공 88년 3월에 설립돼 89년 4월부터 공장가동이 시작됐다는
T.D.S.사무실은 널찍하고 깨끗했으며 냉방도 잘돼 있었다. 동성화학의 차장급 사원으로 이곳 현지회사에서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朴熙其씨는
진출동기가 생산품인 신발용 접착제의 시장확보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백만켤레의 운동화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1백50톤의 접착제를
태국에 수출해왔으나 이탈리아와 대만과의 경쟁 때문에 제품만 수출하는 방식으로는 시장확보가 곤란했다. 장치산업으므로 종업원은 한국인 4명을 포함해
모두 31명뿐으로 태국근로자의 봉급 수준은 한국의 3분의 1 정도이다. 별다른 노사문제는 없지만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작업장에서의 갈등 등 어려움도 없지는 않다고 한국인 직원들은 말했다.
“노무관리는 큰 어려움이 없어요. 가장 큰 애로는 중간관리층이 우리처럼 애사심이나 책임감이 없다는 겁니다”라고 삼미 사운드
테크의 朴炯宇씨는 말했다. 제너럴 삭스의 李正雨씨도 중간관리층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데 비해 정확히 정해진 일만 하는 등 냉정해 내심
서운할 때가 없지 않다고 했다.
한편 동남아지역에서 이미 공장을 가동하고 있거나 투자허가 취득으로 가동 준비중인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10월 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는 숙련노동자 확보의 어려움을 꼽은 업체가 16개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원재료 및 부품조달의 어려움(10), 현지 및 제3국
업체와의 경쟁 치열(9), 인프라(사회간접시설) 미비(8), 임금수준에 비해 저생산성(5)을 든 업체도 적지 않았다.
태국투자에 대한 우리 기업인들의 관심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한 · 태 합작법인인 코타社(회장 金春埴)가 우리나라 투자업체들만의
전용공단을 만들자는 청사진을 제시해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회사의 田文漢(34) 차장은 이러한 공단이 생기면 봉급조정 · 관세환급 등 몰라서
피해를 당하는 경우를 줄이는 등 여러 가지로 유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계획은 방콕 북쪽에 위치한 태국의 古都 아윳다야 인근지역에 약 60만평의 땅을 공단으로 조성, 90개 정도의 업체를 입주시킨다는
야심적인 내용이다. 이곳에 업종별로 섬유 · 화학(1단지), 전기 · 전자(2단지), 봉제 · 완구(3단지) 등의 업체를 입주시키고 아울러
쇼핑센터, 병원 등의 각종 편의시섯ㄹ과 아파트단지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전씨는 현재 부지 매입이 거의 완료돼 2월에 공사를 시작하면서 분양공고를
낼 예정인데 공사기간은 약3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방콕으로부터 북쪽으로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약60㎞ 지점의 왕너이군에 소재한 공단 예정지는 아직은 황무지 상태로, 잡초만 우거진
황량한 들판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3년뒤 이곳에 과연 90여개의 공장이 들어선 대규모 한국공단이 실현될 것인가.
코타社는 1년전에 방콩시내 랏파오지역에 슬리퍼공장을 세워 공원 2백명을 두고 그동안 4백만달러어치를 유럽에 수출했다. 갖가지
색깔과 형태의 슬리퍼들이 진열돼 있는 회의실에서 이 공장의 매니저 李柄國씨는 공단이 완공되면 이 슬리퍼공장도 공단내로 옮겨갈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인들에게는 태국은 몇가지 중요한 이점을 갖고 있다. 무역진흥공사 방콕주재관장인 雹敬和씨는 태국의
이점으로 정치 · 경제적 안정, 종교적 동질성, 인트라의 상대적 양호, 노동력의 질, 행정체제의 정비 등을 꼽았다.
“태국의 임금은 인도네시아에 비해서 높지만 생산성을 감안해야 됩니다. 태국의 근로자들은 정확히 지시를 따르고 훈련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 한국근로자의 80% 수준까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박관장은 또 태국사람들이 일본과 대만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대만보다는 중공업과 기술에 중점을 둔 한국의 개발전략을 따르고 싶어하기 때문에 한국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태국의 경제관계는 무역거래에서도 활기차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태국에 대한 수출은 87년 2억7천만달러, 88년
5억4천만달러로 상승됐고 우리의 전체 수출이 크게 부진했던 지난해에도 7억달러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동안 수입도 1억9천만달러에서
4억달러선으로 커졌다.
그동안 먼 동쪽의 미국만 바라보던 한국인들은 이처럼 한국경제의 체질변화에 따라 가까운 서쪽 나라들에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의 다변화, 관계의 다변화는 한 나라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숙해가는 과정, 바로 그 자체이다. 식당에 가서도 “레오레오”
(빨리빨리)를 외쳐야 속이 후련한 성급한 한국인들과 “마이 펜 라이”(걱정 말게)가 입에 뭍은 태평스러운 태국인들이 합작투자든 무역거래든 서로
더욱 더 어울려 살아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鄭炷年태국대사 인터뷰 “대기업도 과감하게 진출해야”
방콕시내 사톤타니거리에 우뚝솟은 백색의 쌍둥이 건물, 사톤타니빌딩의 12층으로 鄭炷年 태국주재대사를 찾아 韓 · 泰
경제협력의 현황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면서 한국과 태국간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현대 국가간 관계의
요체는 경제관계이고 그것은 韓 · 泰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역 · 투자 · 경제협력 · 기술협력이 매우 중요하지요. 그동안 개발도상국들은 미국
· 유럽 · 일본 등 선진국과의 경제교류에 역점을 두어왔습니다만 앞으로 한국은 시장규모의 대소에 상관없이 대외거래를 다양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강화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고성장 지역이며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 나라들과의 경제협력 확대는 매우 중요합니다. ● 전통적으로 일본의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는 상당히 컸습니다. 우리의 경우 아직도 동남아에 대한 수출비중이 낮으나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무역의 보완도가 높아지면 그 비중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난해 쭐라롱컨대학에서 열린 아시아 신흥공업국과 태국학자들의 합동세미나에서 저도 그런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지난해 7월 한국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6개국과 무역 · 투자 · 관광 등 3개 부문의 대화
상대국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 태국에 대한 직접투자에 관해 말씀해주시지요. 정치 · 사회적으로 안정돼
있고 노동의 질도 높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투자대상국입니다. 또한 베트남 · 라오스 · 캄보디아 · 버마 등 주변국으로 진출을 확대해나가기
위한 기지가 될 수 있는 것이 태국입니다. 태국에 대한 투자는 중소기업의 진출도 필요하지만 대기업도 석유화학 · 제철 등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
부문 등에 과감히 진출할 필요가 있어요. 임금이 다소 높고 태국사람들이 일처리에 신중해 답답하게 느끼고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만
태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주변시장의 여건 등을 감안할 때 과감한 진출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3월 최호중외무장관과 태국의 싯 외무장관간에 한 · 태
투자보장협정이 조인돼 한국기업의 투자진출이 법적으로도 보장됐습니다. ● 직접투자의 경우 유의할 점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태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적인 다당내각제를 잘 운영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타협을 잘하는
국민입니다. 그들의 장점을 칭찬하고 진심으로 좋은 친구가 되면, 베푸는 것 이상으로 주고 싶어하고 또 주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봅니다.(배석했던 李成彦공보관이 우리나라의 경우 동남아에 관한 심층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주 적어 아쉽다고 지적하자 鄭대사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일본상사의 해외지사 근무자는 평생 동안 한 지역에서 계속 근무합니다. 우리도 상사지원 · 외교관 · 경제전문가들이 현지어를 숙달하고
지역전문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을 위해 승진이나 장래문제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전문가가 너무 없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