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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환경 지키는 ‘공익 대변자’

 노동부 서울서부사무소 정현옥사무관의 책상 위에는 태극기와 산업안전기가 사이좋게 V자를 그리고 있다. 재해율 0을 뜻하는 ○마크에 톱니바퀴가 그려진 녹색 산업안전깃발이 젊은 여성관료의 깔끔한 용모와 어울린다.  “대학시절 현실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습니다. 노동의 구체적 현실을 알고 싶었고 행정의 입장에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노동부 산하 전국 41개 지방관서 중에서 유일한 여성사무관인 그는 노동문제에 대한 오랜 관심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가 이곳에 부임한 지는 1년째, 관할구역(마포 · 용산 · 서대문 · 은평구)내의 산업재해 예방 및 사후처리와 관련해 사업체를 지도 · 감독하고 시정조치를 취하는 일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사업주쪽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굳이 젊은 여성의 한계를 벗어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출발은 소극적일지 모르나 모든 업무추진에 있어 정석을 밟겠다는 야무진 자세다. 이러한 야무짐으로 그는 지난해 관할구역내의 산재율을 전년대비 24%나 감소시킴으로써 목표율을 10% 초과달성하는 실적을 올렸다.  “사고가 안나면 재해율은 올라가지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유해환경이 문제입니다. 이에 노출되어 장기간 일하는 근로자들은 알게 모르게 골병이 듭니다. 따라서 올해는 안전상의 재해보다 근로자 보건에 역점을 두어 직업병을 유발하는 유해 작업환경 개선에 업무의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그는 직업병 환자임에도 이를 구제할 제도적 틀이 없는 경우를 만날 때 냉엄한 현실의 시종일 수밖에 없는 공무원의 갈등을 느낀다고 실토한다.  “발은 현실에 두고 머리는 이상을 쫓아야 하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분석도 중요하지만 이상주의자로서의 안목도 꼭 필요합니다.”  공무원생활 5년 동안에 익힌 처신의 철학이다. 그는 ‘공익 대변자’로서 공직자가 지녀야 할 바는 자존심이라고 말하면서도 일방적 청렴성만을 요구하는 사회풍토에 아량을 구한다. 특히 하급직 공무원의 경우 ‘봉사’에 상응하는 ‘자부심’을 보장해줄 만한 제도적 · 경제적 여건 마련이 되어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다. 일례로 그의 관할내에는 3천여개의 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데 감독관 3명의 인력으로는 불철주야 1년 열두달을 뛴다 해도 흡족한 업무 수행은 어렵다는 얘기다.  스스로를 노동부안의 극성파라 평하는 그의 품새에는 자신이 정한 삶의 방향을 함부로 꺾지 않는, ‘요즘 여자들’의 당찬 고집과 자신감, 적극성이 가득하다.  그는 노동행정에 뜻을 둔 젊은 관리로서 오늘의 노사분규에 난감해 하는 현실을 놓고 신중하게 한마디 덧붙인다. “분규의 심각성에 비추어 문제를 보는 시각에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노동행정을 해보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와 지금의 가치관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게 사실고이요. 관리자로서의 ‘지혜’와 ‘순수한 것’간의 상충으로 종종 혼란을 느낍니다.”

 하루 5명꼴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70명 이상이 장해자가 되는 세계 제일의 이 산재왕국에서 이처럼 각성된 소명의식으로 官의 역할을 해내는 젊음이 만개할 때 내일 우리 노동자들의 삶터는 보다 밝고 따스해지리라 기대하며 그의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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