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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강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우리나라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것과 같다 하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선인들이 이 강산을 노래하며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지금도 그 산과 강은 우리의 마음을 적시며 인생을 살찌게 한다. 이 산을 우리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한없이 사랑하고 있다. 어떤 이는 눈물겹도록 사랑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목이 터져라 노래로 그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산이 있기에 노래가 있고 산이 높기에 우리의 이상도 높다.

 산과 호흡하면서 산 지 어언 30여년이 된다.
 내가 처음 산을 대하던 날, 그 아름다움에 한없이 감탄하였고 내마음에는 새로운 꿈과 용기가 솟아남을 느꼈다.

 그 이후로 영원한 동반자가 된 산은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더욱 나를 그와 더불어 살게 하였다. 그 속에서 살면서 사진으로 산을 노래하였고 사진으로 처음의 감격을 되살려왔다.  우리나라의 명산을 들자면 대략 2백여 곳이 된다. 만약 북녘의 산까지 합한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겠다. 그런데 내가 다닌 산의 수를 헤아린다면 아직도 2백산이 안된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모자란 탓이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산을 놓고 그 곳의 산행횟수를 셈하자면 이루 헤아려볼 수조차 없다.
 설악산이 그렇고 지리산이 그렇다. 북한산 · 도봉산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산을 오르면서 과연 몇 번째 오르는가 하는 것을 처음에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츰 산행을 거듭하면서 그 기억이 필요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산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에 비할 때 몇회를 올랐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의 뇌리에 남는 것은 산들이 갖는 각각의 특색뿐이다. 그 기억을 한번 더듬고 싶다. 얼마나 우리의 산이 아름다운가 하는 소중한 체험들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우선 설악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설악산의 특색은 날카로움에 있다. 능선과 바위 그리고 계곡에까지 아주 날카로운 촉감을 준다. 그래서 걸을 때나 사진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날카로움을 좀더 아름답게 표현해보느냐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리산은 그 반대다. 매우 부드러우면서 완만하고 거대한 봉우리들로 카메라의 파인더를 가득 메운다. 너무 크기 때문에 나의 좁은 사진적 시야를 원망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리산은 마치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포근하면서도 인자스러운 그 멋은 다른 어느 산과도 비교가 안된다. 첩첩이 이어지는 능선과 그 사이로 몰려드는 거대한 무리의 구름도 지리산이 갖는 또다른 특색 중의 하나여서 늘 다시 보고 싶은 광경으로 떠올리게 된다.  한라산은 또 다르다. 멀리 바다에서 보면 지극히 완만한 경사의 산이지만, 실제 그 속에 들어오면 설악산 이상으로 날카롭다. 깨지고 갈라진 바위들이 무서우리만치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상에는 하늘의 뭇별을 다 포용할 듯한 분화구가 있고, 가운데에는 백록담이라는 매우 잔잔한 호수가 있어 그 신비감을 더해준다.

 소백산도 나의 기억에서 뺄 수 없는 산이다. 초원의 능선길이 마치 우아한 황실의 양탄자를 밟는 것처럼 장중하고 부드러워 아무리 세찬 바람도 솜털같이 느껴진다.
 오대산은 지리산보다 더 완만하다. 그래서 ‘본다’는 의미로는 단순하게 이해되지 않는 산이다. 오랫동안 수도하며 산의 정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산이다.

 그 심오한 경지는 오대산에서 자라는 나무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꼿꼿하게 쭉 뻗어오른 전나무의 기개가 도승의 석장과도 같은 깊이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정상인 비로봉에서 바라보이는 적멸보궁은 그 자체가 명당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표적 자리여서 그곳에 서면 나도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겨울이 오면 산은 순백의 옷을 입는다. 나무마다 바위마다 얼어붙은 상고대는 자연의 조화가 이토록 신비스러울 수도 있을까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겨울산은 보기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다. 밤새 내린 눈이 키를 넘을 때가 있는가 하
면, 낮에 녹은 눈이 얼어붙어 시퍼런 빙벽으로 변하기도 하고 심한 공포감마저 돈다. 한라산에서 용진각으로 내려올 때. 눈덮인 산길을 밤새도록 더듬으며 헤맸던 적이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허덕이다가 다시 정상으로 간 후 되내려오면서 달빛에 어스름히 보이는 나의 발자국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른 어느 계절보다 눈덮인 겨울산은 보면 볼수록 좋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산 속의 계절이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 항상 새로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을 좀더 순수한 마음에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보이는 그대로 사진에 옮기고 또 그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 곧 명산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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