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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 12월31일과 90년 1월1일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90년대가 80년대와 상관없이 별안간에 새로움을 창출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가만히 정체된 무력감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 역시 자명하다.

 80년대를 보면 연주계에는 계속 누적되는 연주인력안에서 결과적으로 파생된 능력주의의 싹을 본다. 연주자로서 자기 삶을 영위해간다는 것이 기존의 어떤 자리와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믿음을 펼쳐 독자적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의 함의성이 되며, 그게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의식의 전환을 몇몇 예에서 본다. 90년대 연주계에 그 싹의 자람을 기대해본다.
 80년대 창작계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필요한 안과 밖의 균형잡힌 호흡의 필요성을 실현시키는 물꼬를 트인 시기였다. 새로이 싹튼 안으로의 민족주의가 국제주의와 대립상을 보인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는 결국 서로가 서로의 사슬에 꿰어 있음에 화해로서 의연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미 완성도를 보이는 개별적 작업은 그대로 지속되어야 하며 민족음악에 대한 정열은 더욱 치열해져야 할 것이다.

 90년대의 비평계는 어는 지면이고 고정평란의 설치로 활로를 텄으면 하는 마음이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전문인이든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이든 80년대의 경직된 제도와 나쁜 관습을 뛰어넘는 모든 것이 내 일이요, 나로부터라는 적극적 자세를 지녀 그로써 90년대의 그림을 좀 더 밝게 해주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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