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시계를 찼다고 해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달력을 갈았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80년대와 90년대의 사이는 오십보 백보 사이보다 짧다.

 80년대에 무엇이 있었던가? 폭압과 항쟁이 있었다. 80년대의 문학에 무엇이 있었던가? 절망과 분노가 있었다. 초월과 저주와 드잡이가 있었다. 아니다. 80년대에 있었던 것은 폭압과 항쟁의 곱셈이 낳은 새로운 사회의 판도이며, 80년대 문학기 이룬 것은 절망과 분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생명들의 거친 삶이었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현상들이 아니라 그 현상들의 관계가 만들어 낸 삶의 구조이다.  문화에 관한 한 80년대가 90년대에 마련해 준 것은 울타리 없는 보편적 참여의 광장, 넓이만을 이끌어온 자기 주장의 문화들은 그 안에서 더욱 신명스럽게 제 목소리를 틔우겠지만, 그러나 또한 어느새 동참의 권리를 주장하며 뛰어든 무수한 경쟁자들과 살을 부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들이 마지막 남은 제 껍질마저 허물고 녹아 버무러져 새로운 군중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지, 아니면, 죽은 기형도가 끝내 절망했던 것처럼 ‘대단히 고집센 거위’를 기르는 고집을 저마다 키울지, 그리하여 그 결말없이는 싸움에 지쳐 새로 판 저마다의 동굴로 후퇴하여 자기 주장의 송신 안테나만을 지상에 내미는 또다른 자발적 익명의 군중세계를 이루게 될지 나는 모른다.

 인문주의적 토양에서 잘 자라는 문학, 고급과 저속의 위계질서가 공시화된 토양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폈던 문학은 아마 상당 부분의 제 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를 추억할 것이고, 혹자는 재빠른 변신을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함께 사는 문학도 있을 것이다. 주장자가 아니라, 질문자로서 호미를 들고 수평 무대밑에 무한히 뚫려 있는 지하동굴을 캐는 탐구자로서. 아니다. 문학 스스로가 변모할 것이다. 어떻게? 나는 모른다. 다만 살아보는 게 그 대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