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약속→‘불가피론’흘려 충격완화→선거 후 발표” 의혹 증폭
드디어 쌀 시장까지여는가. 시장개방과 관련한 선진국과의 실랑이 속에서도 쌀시장만은 열 수 없는 일로 여겨져왔다. 쌀마저 수입하게 되면 다른 농산무시장이야 파죽지세로 유린당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쌀은 국민 전체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품목이며 시장개방 압력에 대한 최후의 저지선이라는 것이 폭 넓은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고위 당국자들의 일련의 발언은 우리의 쌀시장이 결코 성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줘준다. 그 사실을 일깨워 개방의 충격을 최소하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몇몇 관계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쌀시장 개방을 미국 정부에 이미 약속했다고 주장한ㄷ. 朴 吉 제네바 주재 대사의 “쌀시장 개방 불가피” 발언과 李 상공부 장관의 쌀시장 개방문제에 관한 언급은 농산물시장 완전개방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박대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일본이 최소한도의 쌀시장을 개방하면 우리도 시장을 열 수밖에 없으며 쌀의 개방은 최소시장 접근 개념을 살려 우선 3~%%만 시장을 연뒤 연차적으로 확대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실무수석대표인 박대사의 발언은 우리 정부의 쌀시장 개방 방침이 이미 서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이장관이 미국 방문중에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방침이다” “농산물 협상이 재개되면 한국은 새로운 입장을 취할 것이다” “쌀문제뿐만 아니라 입장을 전반적으로 우리의 입장이 미국에 매우 협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두 고위 당국자는 최근 발언은 정부가 이미 쌀시장 개방에 관한 마음을 굳혀놓고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만 이장관의 경우는 보도내용이 다소 엇갈린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와는 달리 워싱턴의 통상전문 인간지민 〈데일리 이그제큐티브〉는 “이장관은 미국의 입장에 더욱 협조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의 쌀시장 개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통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과는 이야기 끝났다”
중양대의 金成 교수는 박수길 대사가 일본의 쌀시장 개방
움직임을 전재로 우리의 시장개방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항복’할 경우 계속 버티고
있는 일본이 궁지에 몰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 터에 박대사가 거꾸로 일본을 걸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모리타 다케시
농무관은 김교수의 말을 뒷받침한다. “일본 쌀시장 3~5% 개방 움직임이라는 말을 터무니 없는 것이다. 쌀은 절대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시장 ‘개방 시나리오’를 이미 작성하지 않았느냐하는 의문은 미국 관계자들의 반응에서도 제기
될 수가 있다. 하계의 한 인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지난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 정비공업협회의 데이비드 그레이브스 회장과
미국싸랭산자협의회 제임스 밀리 부회장이 정부 당국자들을 만나고 난 후 “두고보라”고 말하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쌀시장 개방에 관한 언질을 받았음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칼라 힐스 대표는 전국 농업진흥협회 대표들에게 “앞으로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유럽공동체가 농산물에
대한 시장 장벽을 낮추게 되면 한국과 일본의 쌀 수입개방은 저절로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 했다.
정부의 쌀시장 개방의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 흘러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15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재개를 위한 대사급 간담회’에서 우리쪽 수석대표로 참석한 선준영 체코 주재 대사가 “개방의 대상에 쌀을 포함하여 거의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했으며, 공식적으로 제출한 15개의 비교역 품목(NTC) 가운데 일부 품목의 포기를 천명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얘기는 그후 2월26일부터 농산물 협상차 제네바에 출장을 갔던 농림수산부 관계자들이 현지 협상 상대자들은 한국이 쌀을 포함하여 전품목에 대해 개방할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정부의 쌀시장 개방의사가 어렴풋이나마 새어나온 것은 지난해 12월 전부총리가 대통령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하고 미국쪽의 강한 불만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돌아온 이후 부터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문제 대책위원장인 張愿 교수(단국대 · 농업경제학)는 지난 2월6일 워싱턴의 무역대표부를 방문했을 때 크리스토프 수석 부대표가 “한꾸 정부 관리들이 미국에 와서는 개방 약속을 해놓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개방의 어려움을 설득하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언성을 높이더라고 주장했다. 장교수는 또 그곳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한국의 한 고위 당국자가 쌀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고려하겠다”고 발언하는 것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두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京 농림수산부 장관은 “쌀을 한 톨도 수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림수산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실무자들은 쌀시장이 개방 쪽으로 가는 듯한 ‘감’을 굳이 부인하지 않으면서 우려와 함께 외무부 · 상공부의 자세에 대한 강한 불만을 보였다.
이런 일련의 발언파동 배후에는 일부 경제각료들의 ‘농업포기론’이 도사리고 있다. 이와 관련 李承 전 부초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비유는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그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뿐만 아니라 몇며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우리나라의 농업을 암환자에 비유했다고 한다. 농업은 회생이 불가능한 산업으로서 투자할 가치가 없는 암적인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가운데 한 사람은 그가 이를 근거로 “농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극와 같은 비교우위론을 신봉하는 각료들이 농업보호라는 차원은 무시하고 값싼 미국쌀까지 들여와야 한다는 농수산물 개방논리로 치달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경제팀은 상황인식 역시 농업을 암환자로 보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족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동안에는 암환자에게 암에 걸린 사실을 숨겨왔다면 최근에는 그 사실을 알려 빨리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개방압력 버틸 길 얼마든지 있어
쌀이 수입될 경우 경쟁력이 없는 우리나라는 쌀 생산기반은
여지없이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수입쌀의 주종을 이룰 것이 분명한 미국캘리포니아산 쌀은 값이 싸고 맛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중에 미군 PX를 통해 불법 유출된 미국쌀 ‘캘로즈’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깃 ㅣ작한 것은 벌써 89년께부터다. 가격은 우리나라의 일반미 상등품과 비슷한 수준이며 ‘무공해 쌀’로 알려졌기 때문에 미국쌀을 취급하는 쌀가게와 ‘줄이 닿는’ 부유층이 선호하고 있다. 물론 진열을 해놓거나 사람에게 직접 판매하지는 않는다. 단골고객으로부터 전화주문을 받고 배달판매만 한다. 서울 이태원과 강남 대치동의 쌀가게들은 미국쌀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줄 뿐 유통경로와 판매량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농림수산부 장관은 최근 국회본회의에서 “89~90년에 농림수산부 관세청 각 시· 도가 합동단속을 시시, 총 7개 업소를 적발하여 25파운드(약12kg)들이 77포대를 압수하고 벌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쌀이 얼마나 불법유통되고 있는가가 아니다. 미국쌀이 일부 계층에게나마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쌀시장 개방시 우리나라 쌀농사가 맞게 될 비극적 장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쌀 경작 농가의 호당 경작면적은 1백6ha인 데 비해 우리나라의 한가구당 쌀 경작 면적은 0.8ha에 불과해 영세농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이 있을 턱이 없다. 쌀의 국제시세는 1톤당 3백50달러선으로 국내가격의 5분의 1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만약 현행 5%의 관세율을 적용, 쌀시장을 완전 ㅈ개방할 경우 쌀농가의 순손실은 88년 기준으로 1년에 3조7천여억원에 달하고 쌀 생산량은 88년 6백5만톤의 6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미국과 유럽공동체 입장의 중간지점에서 협상이 타결된다면 국내 보조금을 10년내에 50%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총 쌀생산액 6조2천8백90억원 중 국내보조 총액은 정부보조금 6천9백27억원과 수입규제를 통한 가격지지금액 4조7천5백76억원을 합쳐 총생산액의 87%에 달한다. 88년 현재 우리나라 쌀재배 농가는 모두 1백63만호. 여하한 조건하에서도 쌀시장의 개방은 생산기반의 붕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연구소는 농산물이 상품으로서의 가치 외에 총생산액의 1.2배에 해당하는 환경효과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로 인한 소득의 비중이 커서 그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 농업 전문가는 이농으로 인한 도시집중, 교통혼잡 유발, 상수도 · 주택문제, 공해문제 등의 요인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 쌀농사 포기로 인한 환경효과 상실은 쌀 생산액 감소의 3.2배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쌀농사 포기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또한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의 논(1백35만정보0은 소양감 댐 6백의 담수능력을 가지고 있어 홍수조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논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될 경우 심각한 환경 · 생태계의 파괴가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쌀시장 개방을 일본의 쌀시장 개방과 견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우리나라는 쌀농사가 농업소득의 50%이상, 전체 농가소득의 30%이상을 차지하는 데 비해 일본 농가의 겨우 쌀농사로 인한 수입이 전체 수입의 4.5%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일본은 18년 전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국제수지 조항을 ‘졸업’한 후 계속해서 시장개방에 대비해왔다. 농업전문가들은 이론이 농업구조 조정과 쌀의 품질개선을 이미 끝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쌀시장을 5%만 개방해도 1년에 2백만석이 수입된다. 현재도 우리 정부는 과잉생안으로 인한 쌀의 재고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재고가 2천만석에 이르고 양특적자만 해도 4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쌀을 수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농업 관게자들은 주장한다.
3~5%의 쌀시장 개방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쇠고기의 경우처럼 개방 폭이 넓혀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쇠고기시장을 개방한 첫해인 88년 정부는 쇠고기값 상승을 억제한다는 핑계로 1만4천톤을 사들였다. 그러나 수입 쿼터는 점차로 증가 됐고 올들어서는 수입 쇠고기가 전체 쇠고기시장의 53%를 점하게 됐다. 쌀도 필경 쇠고기꼴이 될 것은 ???한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쌀시장 개방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버틴다면 시장을 안 열 수도 있는가. 또 버틸 근거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는 우리의 쌀시장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조항이 많다고 주장한다.
수입제한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규정인 과세무역일반협정 11조2항C는 국내에서 과잉생산되는 농산물의 경우 정부는 생산을 통제하여 생산품의 가격을 유지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런 품목에 대해서 수입규제를 인정해준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주로 캐나다 · 일본의 낙농제품에 대해 적용돼왔다. 또 관세무역일반협정에 가입하기 전 인정받았던 수입제한 품목을 관세무역일반협정에 들어갈 때도 인정받는 ‘할아버지'(Grandfather) 조항도 있다. 미국은 회원국 3분의 2의 동의를 요하는 ’웨이버‘ 조항에 의거, 낙농제품 설탕 땅콩 등의 수입을 제한해왔다. 정부가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민들. 하역작업 거부 등 저지대책 모색
쌀농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3천5백년
전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쌀은 우리 겨레의 삶 자체였다. 1년 24절기 세시풍속 자체가 쌀농사를 중심으로 한 생활리듬이었다. 우리 겨레가 사는
곳에 쌀농사가 있고 겨레가 이동한 곳에는 언제나 쌀농사가 함께 따라갔다. 그만큼 쌀에는 국민정서가 농축돼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사무처장은 “주신인 쌀을 하나의 거래상품으로서 개방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나간 짓이다. 1만1천 미국 농민의 수익을 늘려주기 위해 7백만 한국 농민의 생명을 담보잡힐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광역의회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 쌀시장 개방을 발표해버리지 않겠느냐 하고 의심한다. “집단적 실력행사뿐아니라 수입쌀의 하역, 운송작업까지도 거부하는 등 다각적인 수입저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전 농림수산부 장관까지도 “미국이 한국의 쌀시장 개방에 그토록 열을 올리는 것 자체가 생산과잉인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려는 것 아니냐”라면서 우리 정부의 무분별한 쌀 수입개방 논리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쌀시장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바람일 것이다. 만약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쌀시장
개방을 이미 약속했다면, 그 사실을 빨리 국민에게 알려 대비케 해야한다. 쇠고기시장 개방 대처럼 잇따른 선거를 의식해 개방할 것을 안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속이는 일이 되풀이되서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