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지방의회 개원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가 가장 먼저 서두른 일은 속기사 확보였다. 현행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21조에는
“회의내용을 속기 또는 녹음으로 기록 · 보존해야 하며 의장은 7일 안으로 이를 자치단체장에게 통고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국정 최고정책기구인 국무회의의 속기록이 없다면, 과연 온당할까. 한국정부의 국무회의는 국회나 지방의회와는 달리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고 있다. 현행 국무회의규정 제11조(국무회의록)에는 “간사(총무처 총무국장)는 국무회의록을 작성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실제로는 총무처 의정계의 실무자가 총무처 총무국장을 대리해 회의록을 작성하는 게 관례이다. 회의록의 내용도 간단하다. 국무위원들의 의견 개진
순서 등은 생략된 채, 그날의 주요 의제와 회의결과 등만 간략히 기록한다. 그나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총무처의 한 관계자는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다 공개하면 국가기밀상 곤란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또 정부정책으로 놓고 부처마다
의견이 다른데 그 토론과정이 일일이 알려지면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가증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의결기관인 국회와 다른 국무회의의
성격으로 보거나, 정권교체시 회의 석상의 발언이 정치적 보복을 낳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속기나 녹음이 어렵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나 국무회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회의이니만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자당 중진 ㅎ의원은
“비록 의결기구는 아니지만 국정 전반을 논의하며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국무회의”라고 전제하고 “공개하든 안하든 별도로 역사 기록의 측면에서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남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世씨의 논문 〈한국의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 심의에 있어 책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임하도록 하며 역사적인 자료를 남긴다는 입장에서, 국회에서 운용되는 속기록 작성제도가 국무회의에도 도입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한국과 유사한 관행이 적용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일본의 각료회의(각의)는 의사록을 이체 기록하지 않는 게 관례이다. 대신 각의가 끝나면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갖고 각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소상히 공포한다. 프랑스에서는 담당직원이 필기한 노트를 회의록으로 정리해 공식발표하는 점이 우리와 흡사하다. 그러나 회의기록
자체는 문서보관처로 보내져, 수십년간 비공개 자료로 보관된 다음 역사자료로 이용된다. 미국은 할때 닉슨 행정부하에서는 모든 백악관 각료회의
내용을 녹음한 일이 있지만, 지금은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녹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에선 민주적 행정이 제자리를 잡은
데다가 브리핑제도가 확고한 반면, 한국은 행정비밀주의관행이 여전히 뿌리깊어 국무회의의 속기록제도 필요하다는 지적 또한 높다.
‘80년의 봄’ 당시 催圭夏 대통령하에서 5 · 17 비상게엄확대 조처를 추인한 마지막 국무회의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5공정권의 정통성 여부 논란도 당시 기록이 없었던 데 있다. 국정운영상 비밀이 필요하다면, 속기록 작성 또는 녹음을 한 뒤 내용별로
비밀기간 등급을 정해 뒷날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