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은 반갑고 기쁘고 때로 경이로운 소식을 가져온다. 근래에도 나는 국내외 문우 철학자들로부터 좋은 편지를 받았다. 특히 묵필을
보낸 어느 노 시객, 그리고 독일 ‘검은 숲’에서 온 한 독일철학자의 편지는 큰 기쁨을 안겨줬다.
물론 우편은 어떤 때 슬픈 일, 언짢은 소식도 전하지만, 그것은 우편 탓이 아니라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우편이 삶의
총체적 전달임을 알게 된다.
엊그제는 귀가하다가 동네에서 젊은 우편집배원을 보았다. 비가 오는데 자전거를 세워놓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에게 손짓을 하고 다가서며 여기
주민인데 낯이 설다고 말을 건넸다.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를 새로 맡게 된 사람으로 이제 막 우편배달을 마치고 숨을 돌리는 참이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민에게 우편물을 전해온 중년의 집배원은 다른 데로 배치돼갔다는 것이다. 몇 해가 되었으니 갈릴 때도 됐겠지만,
언젠가 나와 마주치자 댁에는 우편물이 유난히 많다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농촌남녀 짝지어준 집배원 집배원의 일도 대도시와 농촌에서는 같지 않다. 강원도에서 체신봉사상으로 빛나는
어느 유명 집배원의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는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한 우체국에 근무하고 있다. 물론 마을 사람에게 사랑과 소식의 전달자이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은 많은 농촌남녀를 짝지어준 인생 상담역까지 하였다. 그는 하루 1백여리 길을 다니는데 때로는 산골짝 외딴집에 한통의
편지를 전하러 몇 십리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가 돌리는 우편 량은 하루에 보통 삼백 통, 연말연시에는 1천여 통이다.
우리 동네의 새 집배원은 새파랗게 젊고 경력도 십사 개월째라 한다. 그는 족히 이십 리나 되는 서초우체국에서 자전거에 우편물을 싣고
오는데, 따로 운송되는 그 두 배 가량의 우편물도 함께 배달한다. 하루의 배달 량은 보통 1천2백통, 연말연시에는 오천 통 가량이라
한다.
도시의 집배원은 아득히 먼 거리를 다니지 않는 반면 몇 배나 되는 우편물량을 높은 지대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도 돌려야 한다. 나는
호기심에서 물어보았다. 하루에 배달하는 우편량 1천2백통에서 편지류는 얼마나 되느냐고. 그는 고작 삽십 통 가량이라 한다. 그것뿐이냐고 다짐하니
그렇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통지서 인쇄물 서적 등이라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의 한해 우편물이용통수는 85년에 약 32통, 88년에 44통, 90년에 55통으로 늘고 있다. 도시와 농촌에서 우편집배원의
일은 책임구역의 넓고 좁은 것, 우편 량의 많고 적은 것뿐 아니라, 주민과의 관계 親流가 크게 다르다. 한쪽이 소박하고 친근하다면 다른 쪽은
소원하고 무관심하다 할까.
우편은 개인과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우편물을 1종 봉서, 2종 엽서, 3종 인쇄물, 4종 서적 등으로
분류하는 건 원래 그 순서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근래 우편물 종류에서 서신이 극히 적고 대부분이 인쇄물이나 서적 등이라는 건
산업화에 따른 놀라운 추세라 하겠다. 그런데 인쇄물 서적 등의 홍수 속에서 정작 우편의 눈동자 같은 서신이 자칫 분실되는 일이나 없을까
염려된다. 보편적으로 우편물 가운데서 서간이 가장 귀중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서신 류가 극히 적다는 건 무엇을 말할까. 우편물, 특히 편지가 없는 날이면 세상에서 아무도 자기를 생각하거나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섭섭해 하는 사람을 보았다. 인간관계에서 우편은 個의 존재를 확인한다.
전화 같은 통신수단, 자동차 항공기 같은 교통수단 등 문명이기의 발달이 현대인에게서 편지 쓰는 즐거움을 빼앗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사와
개인사의 원사료가 점점 사라진다. 변천이 심한 상황에서 사람은 떨어진 가족 벗 인연 있는 사람에게 엽서나 편지를 씀으로써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를 규율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편지쓰기는 삶의 새로운 기쁨과 경이를 가져온다. 대중 속의 고독이 우애와 교섭으로
변모한다.
이땅 어디서든지 환한 오렌지 빛깔의 제비가 나는 상징을 내건 우체국 그리고 같은 빛깔의 우체통과 집배원을 보면 반갑고 고마운 까닭은
무엇인가. 옛적부터 우편은 개인과 사회와 세계를 이어주는 기쁘고 믿음직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만국을 하나의 울안으로 만드는 우편의
이념은…
“소식과 앓의 전달자요, 교역의 방편이요, 서로의 사귐 그리고 사람과 나라 사이의 평화와 선의의 추진자요, 공감과 사랑의 전달자요, 헤어진
가족의 연줄이요, 공동생활의 증진자”라는 것이다(우드로 윌슨 윤문).
우리의 우정사는 아득히 고구려의 羅適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조선 초에는 羅站제도의 羅舍가 전국에 오백 군데나 달했었다. 우편은 개인과 사회와
세계의 연줄로서 21세기를 내다보는 우리문명을 이루는 데 큰 몫을 했다. 자랑스럽다. 집배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