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노문협’ 대표 박인배씨 구속 …춘 투와 함께 ‘음반법 공방전’ 불붙을 듯

지난 4월3일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서노문협) 대표를 맡고 있는 박인배씨가 ‘느닷없이’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문화부에 제작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노동자노래단 노래모음 2집(〈전노협 진군가〉), 3집(〈노동자 행진곡〉), 4집(〈민중연대 전선으로〉), 〈철의 노동자〉 등 네 가지 불법 녹음테이프 2만5천개를 제작 ·배포해 ‘음반 및 비디오 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반 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속은 박씨 본인은 말할 나위 없고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억울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할 법이 유독 박씨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행법대로 적용한다면 주마다 ‘불법 테이프’(설 교집)를 만들어 피는 많은 대형교회 목사들, 남의 음반을 무단 복제한 ‘해적판’을 파는 리어카 노점상들, 이른바 더블데크 카세트레코더를 이용해 녹음한 테이프를 친구에게 선물한 학생들 등으로 교도소는 미어터질 것이다. 또 이번에 음반 법을 적용한 이른바 민중가요 또는 운동가요 불법 테이프만 하더라도 ‘공연윤리 위원회 심의 거부투쟁’을 벌여온 가수 정태춘씨의 〈아, 대한민국〉,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음악분과의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통일노래한마당〉, 그밖에 전국 각 지역 및 부문, 대학 노래패들이 만든 것 등 2백여 종이 서점이나 노동 현장에서 팔리고 있다. 게다가 박씨는 ‘진범’이 아니니 자신을 대신 잡아가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노동가요 작곡가인 노동자 노래단의 김호철씨는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위의 불법 테이프들은 88년 말부터 91년 김월까지 본인이 기획하고 작 ·편곡했으며 녹음도 지휘했다. 더구나 충혈된 눈으로 밤새워 ‘불법복사’까지 했다. 박인배씨를 즉 각석방하고 그 잘나빠진 음반 법을 본인에게 적용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왜 박씨만을 영둥포 구치소에 가두었을까. 박씨의 변호인 박용일 변호사는 “노동운동 문화선전대 역할을 하는 서노문협을 노동운동가요의 ‘대량보급창’으로 지목한 당국이 5월 춘 투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민예총 “노동자 문화에 대한 탄압” 주장
실제로 90년대 노동문화예술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의 하나가 대형집회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공연활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인데 서노문협은 그 선도적인 역할을 맡아온 단체이다. 특히 최근 운동권에서는 대형집회가 공권력에 의해 원천 봉쇄 되는데다가 대중 동원에도 어려움이 크자 ‘손님을 쉽게 끌 수 있는’ 대중 집회적 대형공연(이른바 대리 대형집회)에 힘을 쏟고 있다. 서노문협의 노동자노래단(노노단)과 노동자문화예술운동 연합(노문연)의 노래분과 ‘새벽’ 등은 바로 그 대리 대형집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따라서 민예총은 박씨의 구속을 “단순히 음반법이라는 실정법 저촉에 대한 단속이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 문화의 성장에 대한 탄압의 시작”으로 보고 기존의 ‘음반 법 개악저지를 위한 공동 대책위’(위원장 정태춘)를 ‘음반악법 철폐를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최병선 ·사무국장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전환, 새로운 대응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또 “나대신 들어간 셉”이라고 말하는 정태춘씨는〈아, 대한민국〉에 이어 새로 준비한 ‘불법 테이프’를 5월초부터 공개 보급 하면서 ‘불법투쟁’을 전개할 예정이어서 음반 법을 둘러싼 공방전이 춘 투와 함께 불붙을 전망이다. 노래는 다른 문예 부문보다 대중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부는 현재 음반에 대한 공륜의 사전 심의와 음반제작자의 등록의무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당국이 박씨를 구속한 것도 사전 심의를 받은 곡을 음반 제작자 등록을 한 사업체에서 만들었을 경 우, 즉 합법공간 안에서의 노래운동은 허용하겠지만 노동운동과 결합해 노래를 ‘무기’로 삼는 노래운동은 허용할 수 없다는 선별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공륜’ 심의에서 탈락 ·개사되는 노동가요
사실 그동안 노래운동은 합법공간을 최대한 이용해 건강하고 진보적인 대중음악에 목말라온 대중에게 운동가요를 널리 전파해 온 쪽과 위와 같은 사전심의와 등록의무를 거부하고 현장 중심의 노동가요를 ‘불법’으로 전파해온 쪽으로 나뉘어져 왔다. ‘노찾사’가 전자를 대표하는 경우라면 김호철씨와 노노단이 후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당국은 전자의 경우에는 기존의 공륜 심의로 다스리겠지만 후자는 처벌규정이 강화된 새 음반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최근에 출반된 몇 가지 합법 음반과 불법 테이프를 견주어 보면 그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노찾사’가 펴낸 3집 음반의 경우, 공륜 심의 과정에서 수록곡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양성우 작시)과 ‘귀례 이야기’의 가사 일부를 고쳐야 했으며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노래모임 새벽 작사 ·작곡)는 아예 탈락됐다. 지난 2월에 큰빛 기획에서 펴낸 음반〈언제나 시작은 눈물로〉의 경우,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전교조 음악분과 주현신 작사 ·작곡)와 ‘우리 이야기’(김인보 작곡)가 각각 가사가 ‘과격’, ‘저속하다’는 이유로 심의에서 제외되었으며 널리 퍼진 애창곡인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연주곡으로 처리되었다. 또 성남지역의 노래패 노래마을이 펴낸 2집 음반〈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에서는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한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의 가사 중 “벗이여 어서 오게나 /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가 “이제 밤은 너무도 깊은데”로 고쳐지는 등 3곡이 수난을 당했다. 그밖에 ‘솔아 !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안치환싸의 두 번째 독집음반(5월초 출반 예정)에서는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의 가사 중 “반란의 고행’이 “생명의 고행’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 18번이 된 ‘철의 노동자’ 가사는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가 ‘단결’로 바뀌었다.

공륜의 심의를 거부하고 온전하게 가사를 보전한 것이 바로 대학가나 노동현장에서 팔리고 있는 이른바 ‘불법 테이프’들이다. 앞에서 든 대로 이 같은 불법 테이프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 정부당국에서 우선으로 문제 삼는 것은 노노단, 새벽 등이 제작 ·배포하는, 노래를 ‘무기’로 삼는 노동가요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김호철, 김영애씨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노래모임 노노단인데 노노단은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선전대’와 무기(노동가요)를 보급하는 ‘보급 대’ 역할을 자임하면서 노동현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