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사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혹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할 수 있다면 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영국의 여성 영화감독 샐리 포터(43)가 감독한 영화 〈올란도〉가 권위있는 독립영화제 ‘선댄스 페스티벌’과 뉴욕 현대미술관의 ‘뉴
디렉터, 뉴 필름’을 통해 공개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1928년작)를 각색한 이 영화는, 미소년 귀족 올란도가 1600년부터 약 4백년에 걸쳐 자아를
찾는 여성 올란도로 변모하는 과정을 독특한 무대 장치와 효과적인 음악을 사용해서 그리고 있다. 원작에서 울프는 자기 친구 비타 색크빌 웨스트를
모델로 하여, 한 개인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영화에서 올란도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미소년 귀족으로 등장한다(1600년). 그는 늙은 여왕으로부터 막대한 재산과
총애를 받는다. 여왕이 죽은 뒤 올란도는 러시아 대사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1610년). 이 사랑이 시한부로 끝나자, 올란도는 한때 시 쓰기에
몰두하다가(1650년) 집어치우고 정치에 뛰어든다. 이후 올란도는 콘스탄티노플 대사가 되어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방문한다(1700년).
여기서 올란도는 전쟁을 만나 죽고 죽이는 전투의 처참함과, 남성의 속성과 운명에 관한 깊은 성찰과 고뇌를 느끼고 확인한다.
그리고 그는 깊은 잠에 빠진다.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나 거울 앞에 나신을 비춰본 올란도는 자기가 여자가 됐음을 발견한다.
“남·녀 구별이 인간의 창조성 제한” 여자의 몸으로 올란도는 런던의 귀족 세계로 돌아가
사교계에 드나든다(1750년). 그러나 올란도는 여자이기 때문에, 전에 자기가 소유했던 城과 재산의 소유권을 상실한다. 그의 미모에 반해
접근하는 남자들의 청을 물리치고, 올란도는 젊은 남자 셀머디인의 아기를 갖는다(1850년).
중기 기관의 수증기가 화면에 가득 차오르면서 올란도의 20세기 모습이 보인다. 그는 오토바이에 자기 딸을 태우고 과거에 자기가
소유했던 성을 향해 질주해간다. 박물관이 되어버린 성은 공개돼 있다. 일본 관광객이 사진 찍는 모습을 배경으로 올란도는, 옛날 1600년에
자기가 기대앉아 있던 나무 아래로 가서 조용히 명상에 잠긴다. 올란도의 어린 딸이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올란도의 모습을
비추는 동안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올란도가 소유했던 성을 올란도 소유로 돌려주지 않고 박물관으로 처리함으로써, 물질에 대한 소유보다 무소유가
더 큰 정신적 행복을 가져온다는 개방적 소유관을 보여준다. 나아가 올란도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시인으로, 정치가로, 또는 사교계의 중심 인물로
다양한 관심사와 삶의 형태를 맛보고, 나중에는 여성·모성으로 돌아가는 등, 한 사람이 인생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가치와 경험을 맛보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무소유의 철학과 마음의 평온을 통해 자아를 찾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다소 동양적인 철학을 역설한다.
샐리 포터는 한 인터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남녀의 양성적인 심리 상태와 그 변화를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둔 것 같다. 결국
사회에서 정의하는 ‘남성적’이라거나 ‘여성적’이라는 제약 때문에 개인이 지닌 창조적 가능성이 제한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14세 때부터 소형 영화를 만들어온 30년 경력의 베테랑 샐리 포터는 연기·촬영·편집·작곡·감독을 겸해내는 재주꾼이다. 79년에
그가 만든 영화〈드릴러〉(푸치니의 오페라〈라보엠〉의 주인공 미미가 극중에서 왜 죽어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를 당시 사회적 당위성에 입각해 여성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 교재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