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정치를 화제로 삼는다는 사실은 정설인 것 같다. 물론 정치 현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끼리 모인다면 화제의
방향이 달라지겠지만,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를 화제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이곳저곳 모임에
가보면 그와 같은 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의 개혁에 대한 평가와 사정에 대한 뒷얘기도 무성하다. 문민시대인데도 3공이나
5공 때처럼 황당한 유언비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이 가운데 양김씨 문제도 으레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DJ는 다시 정치에 복귀할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해서는 “할 것이다” “안할 것이다”라는 의견으로 양립된다. 복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의견도 있고, YS와 손잡고 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DJ의 정계 복귀 문제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관측은 어느
논객이 사석에서 설파한 다음과 같은 얘기이다. “DJ는 정치에서 멀리 멀리 도망갈수록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정처 언저리에 계속 맴돌다가
‘국민의 뜻이니 나오십시오’라는 말에 현혹되었다가는 또 실패할 것이다.” DJ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이 해석이 가장 그럴듯하게 보인다.
YS에 대한 평가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까지는 ‘YS가 기대보다 잘하고 있다’가 대세이다. 어느 좌석이건 이 말은 꼭 나온다.
반대 의견이 없을리 없겠지만 비판을 자제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개혁이 성공해야 된다는 명분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있고, 그 까닭에 YS에
대한 비판은 자칫 ‘수구세력’으로 몰릴 위험이 있기 때문인지 YS는 아직도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총리 역할, 왕조시대의 領相과 다름 없어 그런데 어느 사석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YS는
帝王 같다.” 그러자 곧바로 나온 반응은 “우리 헌정사에서 제왕 아닌 대통령이 있었나.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은 결국 제왕이나 마찬가지가
이닌가”였다.
제왕 같다는 말은 줄곧 의회주의자였던 YS의 정치 스타일이 대통령이 되면서 人治로 변한 사실을 꼬집는 의미일 것이다. YS의
개혁 드라이브가 시작되자마자 지식인 사회 일각과 야권에서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요구한 것은 인치의 폐단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YS를 제왕에 비유한다면 其中有人于此 萬人之外의 領相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국무총리가 그 자리에 해당되는데,
황인성 총리가 과연 영상의 역할과 권위를 갖고 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왕조시대의 영상은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감독’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왕이 賢君이 되느냐 못되느냐는 전적으로 영상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중국 한고조는 簫河라는 賢相을 얻음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고, 조선시대 黃喜는 영의정 재임 18년 간의 선정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국무총리를 흔히 宰相이라고 부른다. 왕조시대의 영상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정부조직법에도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중앙행정
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총리의 역할은 왕조시대의 영상과 거의 같다. 언론에서도 새 국무총리가 발탁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
의미의 재상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데, 그러나 우리 헌정사를 되돌아 보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역할을 수행한 총리가 과연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누구나 고개를 가로 흔들 것이다.
실력자를 따로 세우는 폐단 없애야 총리보다 더 힘이 센 이른바 ‘실력자’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 우리 국가조직 운영의 가장 큰 폐단 중의 하나였음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리고 문민시대인 요즘도 그 현상은 엄존하고 있다. 지난번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무노동 부분임금’을 고수했을 때 황인성 총리는 이장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장관이 ‘실세’여서 그랬던가. 그렇다면
‘중앙 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는 총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국가조직 질서에도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 꼴이 되고 말았다.
요즘 공무원 사회에는 ‘그저 땅에 배를 대고 움직이지 않는 것(伏地不動)이 최고’라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고 한다. 사정 한파의
영향이겠지만 총리의 위상 문제와도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관료사회가 이 지경이 되면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그 ‘개혁의
뜻’이 아래로 흐를 수 없다. 그리고 이 ‘막힘’은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뭐니뭐니해도 민주 질서의 확립이다. 그리고 이 민주 질서는 상식의 존중 속에서 법치가 뿌리내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과 정부조직법상의 총리 역할과 권위는 법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 실세니 실력자니 하는 구시대의 행태가 없어지고 총리가 명실공히
실력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황총리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경륜있는 새 賢者를 발탁해서라도 총리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개혁의 수레바퀴가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