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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민주질서 바로잡겠다”

 林采正 의원(민주·서울 노원을구)은 정치권이 무기력해진 요즘 매우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최근 민주당내 재야 출신 중심의 진보 그룹인 민주정치개혁모임의 이사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결성한 민주정치개혁모임은 그동안 당내외에서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오다가 지난 6월30일 제2차 정기총회에서 ‘정치적 결사’로 거듭날 것을 선언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정치개혁모임은 민주당 내에서 주류와 비주류에 못지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재개표 끝에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국회의원직을 되찾은 지 1년을 맞기도 한 임의원을 만나 개혁정치모임의 진로와 현재 김영삼 정부의 개혁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임의원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 민통련 상임위원장, 평민당 중앙정치연수원장 등을 거쳤다.

개혁모임의 이사장이 되기 위해 운동을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사람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당에 대표가 되려고 무슨 운동을 하겠습니까. 동료 후배들에게 등이 떠밀려 어쩌다 감투를 쓰게 된 것뿐입니다.

지난 7월20일로 국회의원이 되신 지 만 1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해보니 밖에서 볼 때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1년 동안 그저 배운다는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국회의원 자리라는 것이 하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 없이 중요할 수도 있고 아주 하찮아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열심히 해야겠지요. 그리고 생각 밖으로 사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국회의 입지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전환기에 처한 한국 정치를 바르게 이끌려면 국회와 국회의원의 기능을 더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어깨가 무겁다고 봅니다. 또 국회의원이란 것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멋있고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바쁘고 긴장도 많이 쌓이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히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난해 8월 민주정치개혁모임의 출범은 정가에 새 바람이 불겠구나 하는 기대 속에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개혁모임의 활동이 부진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물론 책임은 전적으로 저희들에게 있으나 좀 이해해주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대통령선거를 치렀잖습니까. 대통령선거는 계파와 정치적 입장을 떠나 당력을 총집결해 치러야 하기 때문에 개혁모임이 독자 소리를 낼 여지가 없었지요. 그 뒤 김대중 전 대표의 정계은퇴, 전당대회 등 당내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갔고 김영삼 정부의 개혁바람이 몰아쳐 입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혁모임 구성원의 정서가 서로 다르고 노선이 일치하지 않아 불협화음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동안 그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 아까 얘기했다시피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 개혁모임내의 정서 불일치와 견해 차이를 용해할 만한 시간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입니다. 또 서로 이해도 깊어졌다고 봅니다.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이번에 개혁모임이 ‘탈계보’를 선언한 것은 기존의 사람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노선과 정책 중심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개혁모임의 노선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흔히 말하는 민족·민주 세력이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모두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습니다. 제도권 내의 야당조차도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개혁모임은 김대중씨의 진보성에 힘입어 이제 겨우 정치 활동을 하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생존이 어려웠던 야당, 그 안에서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왔다고나 할까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선과 정책은 앞으로 개발해 나가야지요. 개인적으로는 민주적 복지국가, 시민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 개혁모임의 큰 노선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개혁모임은 어떤 활동에 주력하실 예정입니까?
 아까 노선 얘기를 했는데 사실은 아직 정치 노선을 논할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0여 년간의 군사 독재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기본적인 민주질서마저 모두 헝클어뜨려 놓은 상태입니다. 5·16 이후 모든 1천6백46개의 법률이 새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정치와 관련한 법률은 대부분 헌법 정신을 약화하거나 위반한 것들입니다. 당장은 헌법 정신을 되살리는 작업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김영삼 정부의 개혁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기대도 했고 긴장도 했습니다. 긴장했다는 것은, 혹시 개혁을 너무 잘해 야당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기본 철학과 청사진이 없습니다. 개혁의 요점은 과거 청사진과 질서 창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합니다. 사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니 처음부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의 개혁은 점점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휴가 기간에 예산 대학을 운영할 계획이란 얘기가 있는데요.
 가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예산결산 연수학교를 만들 예정입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국회의원 중에 예산을 제대로 심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 드문 형편입니다. 이 학교에는 개혁모임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은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할 작정입니다. 장기적으로 체계를 세워 예산을 심의하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의원의 전문성을 높여 국민의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감시하면 국민에게 이득이 돌아갈 뿐만 아니라 의회의 고유 기능을 강화하고 정치 문화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개혁모임은 욕심부리지 않고 구체적이고 작은 사업부터 착실히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74년 언론자유회복운동 사건을 계기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동아투위 회원이신데 요즘 언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예전에 비할 수야 있겠습니까. 많이 공정해지고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경영진, 즉 상층부는 아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직도 자본의 논리가 편집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본 통제, 즉 내부 통제가 점점 세련되고 교묘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언론의 상층부가 권력지향적인 사고와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보궐선거에서의 야권 공조를 계기로 야권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야당의 현실을 봤을 때 통합이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대한 여당이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들이면서 계속 몸피 불리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정조사권이라도 발동하려면 재적의원 3분 1을 확보해야 합니다. 또 어차피 정권 교체가 목표라면 지난 대선 때 국민당이나 다른 야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 교체를 이루려면 야권 세력과는 정서적으로나 노선으로나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당혹스럽습니다. 또 선명한 정책 정당으로 나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요. 깊이 있는 토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개혁모임에는 ‘깨끗한 정서 선언’에 참여한 의원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돈 안 쓰는 정치가 정말 가능합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정치한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입니다. 문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또 그 최소비용을 어떻게 깨끗하게 조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해보니까 정말 힘듭니다. 유권자 의식, 선거풍토, 정치문화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폐해가 누적돼 있습니다. 다행히 유권자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점차 상황이 개선되리라고 믿습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아직도 기업인들이 마음놓고 정치자금을 야당에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료 의원들이 후원회를 만들었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떳떳이 자기 이름을 밝히고 돈을 내려고 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정치가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법과 제도 정비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더 민주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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