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참여자치연대 등 베스트 5 ‘맹활약’
한때 인천은 노동운동의 메카였다. 1980년대 인민노련을 비롯해 각종 노동운동 단체가
둥지를 튼 곳이 이곳이었다. 그런 노동운동가들이 시민운동에 뛰어들면서, 인천은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해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총장, 박인혜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등 인천이 고향이거나 이 곳을 거쳐간 이들이 중앙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과 달리 인천 지역의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에는 여러 단체가 1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이름을 올렸다. 인천참여자치연대(19.0%)·인천환경운동연합(15.4%)·인천경실련(13.4%)·민주개혁을위한
인천시민연대(11.8%)·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10.8%)가 베스트 5에 오른 단체들이다.
첫손에 꼽힌 인천참여자치연대는 2002년에 창립해, 지역에서는 막내 격이다.
하지만 활약상은
눈부시다. 인천참여자치연대는 주로 의정 감시·예산 감시·지방자치운동을 벌이는데,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인·의·예·지’ 활동으로 유명하다.
의정 감시와 관련해서는 지난 총선 때 지역 일간지와 공동으로 인천지역 후보자들의 선거자금을 매일 인터넷에 공개했다. 지역 선관위가
문의해 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예산 감시와 관련해서는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벼르고 있다. 광주 북구나 울산 동구·북구처럼
예산을 짤 때부터 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준비하고 있다. 출마하는 각 후보자에게 이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게 하고, 당선 후에 곧바로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방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단체의 재정 자립이 필수이다. 유진수
사무처장은 “배가 고파도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회원들의 회비로 100% 운영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운동가에는 ‘영원한 청년’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3.9%)이
꼽혔다.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가, 지용택 이사장
그에게는 늘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우선 지용택 이사장은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의 원조이다. 4·19 세대가 정치권으로 뛰어든 데 반해, 그는 노동 현장을 택했다.
1978년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지냈고, <임금의 이론> <영국노동조합운동사> <소득분배론> 등 숱한 노동 이론서를 번역해
출판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그는 준법 투쟁의 원조라는 기록도 남겼다. 전국자동차 노동조합 경기지부장(1968년) 시절,
그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운수회사에 맞서 제한 속도를 지키는 준법 운행이라는 묘안을 찾아냈다. 사실상 단체행동에 사측은 두 손을 들었다.
토박이로서 인천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그는, 1983년 새얼문화재단을 만들어 지역 문화를
일구고 있다.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으로 그가 두 번째로 꼽힌 것도 이 때문이다.
새얼문화재단은 인천 시민 1만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내어 운영하는 시민 재단이다. 지용택 이사장은
“내가 씨를 뿌렸지만, 재단의 주인은 인천 시민들이다”라고 말했다. 재단 이사장이지만, 그는 월급 한푼 받지 않는다.
‘시작은 작게, 그러나 한번 시작하면 끈질기게’. 그의 지론을 반영한 덕분인지, 새얼문화재단의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10년 이상 지속된다. 1986년 4월부터 매달 둘째 주 수요일 오전마다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하는 ‘아침대화’, 1986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새얼 백일장, 1993년 12월부터 발행하는 계간지 <황해문화> 등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새얼문화재단의 대표적인 장수 사업이다.
지용택 이사장에 이어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신현수 대표(3.4%)와 박길상
사무처장(2.8%)이 영향력 있는 시민운동가로 꼽혔다. 신대표는 시인이자 부평여고 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