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지율이 40%를 넘어섰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두었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대권 주자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안에서든
밖에서든 한나라당의 장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내부에서는 ‘야당으로서의 근성이 부족하다’는 자기 비판이 나오고, 밖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선호한 진짜 표심은 10%에 불과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형편이다.
보수 정당은 태생적으로 딜레마를 갖고 있다. 진보 정당이 내일에 대한 비전, 즉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걸고 국민을 유혹할 수
있다면, 보수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긴장을 잃으면 금방 ‘수구’로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수, 이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와 수구의 사이에 난 샛길, 이 좁은 길을 보수는 걸어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사건 속에 겹쳐 존재하는 지난 역사와 내일의 비전을 함께
통찰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 겹 사이에 난 길을 걷지 못하면 보수는 수구로 추락하고, 겸양은 비겁으로, 사려는 나태로 내몰리고 만다.
더욱 어려운 것은 그 겹을 헤아리도록 시간이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좌고우면하고 우물쭈물하다 보면 논의의 주도권을 다른 정당이 선점해
버린다. 여태 한나라당의 모습이 이랬다. 한 번도 의제(agenda)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총리의 입심이나 여당 주변 집단의
극단적 논리에 옳게 대처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에 치열한 토론 문화가 없는 까닭
그런데 이념이나 주요 정책을 보면 진보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이나 보수를 표방한 한나라당이나 오십보백보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자기 논리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집권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면 반면교사라, 열린우리당은 어떻게 집권당이 되었던 것일까.
내 생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여당은 정치적 행동의 모델을 가지고 있었고, 둘째는 이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 문화가 있었다. 우선 여당의 핵심 집단에게는 행동과
비전의 지침이 되는 모델, 곧 고전이 있었다. 학생운동의 와중에서 그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탐독하고 또 그람시를 위시한 다양한 정치 이론을
배우고 익혔던 터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델들을 현실화하는 방안에 대한 노선 투쟁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혹은
‘밤새도록 끝장토론을 해보자’는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문화가 그것이다(지금 열린우리당이 죽을 쑤는 것은 이 두 요소(가운데 하나)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에는 애초부터 모델이 없었다. 최근 뉴라이트 일각에서 하이에크(노예의 길)나 자카리아(자유의 미래)를 고전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정작 이 당에는 정치적 행동을 제시할 고전이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힘은 경험과 이력에서 나왔다. 하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해줄
모델이 없는 이력은 신기루와 같다. 반공과 건국의 이력, 그리고 산업화의 경험은 이미 디디고 있는 발밑의 흙으로 화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치열한 토론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이념과 방향에 대한 토론이 없는 것은 지침으로 삼을 고전이 없는 사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모델이 없는 토론은 머지 않아 잡담이나 기술적 수준의 대책으로 미끌어지고 마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정책과 행동의 표준으로 삼을 고전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로 보인다. 그것이 서양의 고전들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다. 하나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서 모델을 얻을 수 있다면 정치적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예컨대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면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왕건 그리고
정도전의 정치적 행동과 저작들을 고전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대에 걸맞은 정책안을 만든다면 통일을 둘러싼 내부 토론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그 언어들은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될 터이다. 또 가령 ‘이념적 보수’를 지향하는 정파라면 퇴계와 송시열을
연구하고,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정파라면 율곡과 다산의 텍스트를 전범으로 삼아 정책적 비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전통 속에서 정치적 행동의 전범을 찾아내어(法古) 새로운 정책 방향을 추출할 수 있다면(創新) 그것이 곧 진보와 수구 사이에 난,
보수 정당의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