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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돌려받기로 한 미군기지 11곳 중 아직 한곳도 반환 안돼

 
지난 10월28일 2시 강원도 춘천시 번화가인 명동 에 해골바가지 가면과 ‘스크림’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망토 사내들과 젊은이 10여명은 손에 ‘켐페이지 환경오염 자료 공개’ ‘핵무기 기지설 진상 규명’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춘천 지역에 소재한 강원대·한림대 대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춘천 시내에서 미군기지 캠프 페이지 앞까지 행진하며 유인물을 뿌렸다. 전 날인 10월 27일에는 지역 총학생회장단이 캠프 페이지 기지 정문 앞에서 환경 오염 문제 대책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춘천 캠프 페이지는 올해 한국 정부가 반환받기로 예정된 미군기지다. 이미 지난 3월 미군 대부분이 철수하고 관리자들만 남아 있다. 캠프 페이지 기지의 환경 문제가 다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열린우리당 최 성 의원이 이곳에 1990년대 초반까지 핵무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부터다. 최의원은 최근 비밀 해제된 미국 국방부·국무부 자료를 입수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 핵무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 지역은 춘천 캠프 페이지와 대전 캠프 에임스를 비롯한 여섯 곳이다.
이 뉴스는 춘천 지역 시민단체들과 환경단체를 놀라게 했다. 10월28일 퍼포먼스 시위에 참가했던 한림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정현석씨는 “정부가 환경 오염 실태 조사를 했다는데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만약 환경 오염이 있다면, 오염을 일으킨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10월13일 최동용 춘천시 부시장은,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미군기지 환경 문제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방사능 오염 문제를 점검했고, 최근 구두로 오염된 것이 없다고 통보받았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최부시장은 “(오염이 확인되면) 구체적 협의 내용은 없지만 한·미 상호간 협의해서 치유하는 것으로 계약돼 있다”라고 말했다. 복구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미군기지 반환을 앞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춘천시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미군기지에 핵무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지역에서 환경 오염 규명과 복구 비용 분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 비준을 받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 등에 따르면  2011년까지 서울·의정부·동두천·파주 등 14개 시 34개 미군기지와 훈련장이 한국 정부로 반환될 예정이다. 당장 2005년에만 춘천 캠프 페이지·부산 하야리아를 비롯해 11개 미군기지가 우리 정부에 반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11월 현재 반환이 이루어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정부 주한미군대책기획단 남기수 중령은 “반환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이유는, 환경 오염 실태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태 조사가 끝나고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반환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군사 기지를 ‘굴뚝 없는 화학 공장’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군부대가 배출하는 오염 물질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 유류저장소에서 유출되는 각종 석유. 그 밖에 폐품처리장(DRMO)에서 발생하는 염화솔베트·카드뮴·폴리염화비폐닐, 사격장에서 발생하는 납·크롬 등 다양하다. 특히 국내 환경단체들이 미군기지에 관심이 높은 것은 그 동안 발생한 각종 사고 때문이다. 2000년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독극물 방류 사건은 유명한 사례다. 책임자였던 앨퍼트 맥팔랜드 부소장은 올해 유죄(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최근 미군이 철수한 매향리 사격장의 경우 납과 크롬 등 중금속이 다량 검출되고 있는데, 납의 경우 공장용지 평균 납 농도보다 24배가 높았다. 녹색연합은 반환이 예정된 기지 가운데 열네 군데 기지에서 과거 환경 오염 사고를 낸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방부·환경부는 미군과 공동으로 반환 예정 기지에 대한 환경 오염 조사를 진행 하고 있다. 환경관리공단과 농업기반공사가 용역을 맡았다. 지금까지 최소 15개 미군 기지에 대한 환경 오염 실태 조사가 이미 끝났다. 문제는 이 조사 보고서 내용이 철저히 비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협약에 따르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의 양측 위원장 허락 없이는 어떤 정보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유일하게 외부에 알려진 자료는 지난 9월 말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한 것이다. 그나마 보고서 원문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눈으로 열람한 것을 기억과 메모를 종합해 모은 것이다. 간접으로 공개된 보고서이지만 내용은 충격적이다. 조사를 실시한 15개 기지 가운데 용산 헬기장을 제외한 14개 기지의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어 있었다. 물론 춘천 캠프 페이지 기지도 토양 오염 기지에 속한다. 유계총탄화수소(TPH)가 기준치를 100배 이상 초과했고, BTEX가 14배, 납이 1백2배, 아연· 카드뮴·구리가 기준치를 20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왔다. 또 수질 오염도 심각해서 TPH·벤젠·페놀 등이 먹는 물 기준치의 100배, 테트라클로에틸렌(PCE)이 2.7배, 벤젠의 농도는 39배였다. 이들 물질은 암을 유발하거나 신경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독성 물질이다.

환경 오염 지역을 생태 지역으로 복구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지난해 환경부가 작성한 <환경 오염 및 복원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용산 기지 60%가 환경 오염 공동조사 대상이고, 만약 이 중 5%인 2만4천5백50평이 오염되었다고 가정해도, 복원 비용은 최소 3백72억원에서 최대 9백31억원에 이른다. 반환 예정 기지 34개 전체로 확대하면 복원 비용이 얼마나 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미연합사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이나 기지 환경 문제에 관한 취재에 응할 수 없다. 현재 한·미 양국 간에 협상이 진행 중인데, 현상 중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론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답했다.
2003년 5월 한·미 양국이 서명한 치유 절차 합의서에 따르면, 치유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합의서에는 정확히 어디까지가 오염인지에 기준이 없다. 현재 한·미 양국이 협상하고 있는 쟁점도 이 부분이다. 미국 국방부 지침에는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 미군이 책임지고 치유한다고 되어 있다. 협상을 끄는 동안 올해 반환 예정 기지 열한 곳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녹색연합 녹색평화국 고이지선 간사는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 소재와 원상 복구 의무 규정을 분명히 적시할 필요가 있다. 또 기지 내·외부 환경 실상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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