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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네오 팝’ 대표작가 나라 요시토모, 한국에서 첫 개인전 열어

 
어디서 본 듯한, 혹은 낯익은 그림을 미술관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 감동은 원화(진품)를 직접 대면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한데 나라 요시토모(奈郞美智·46)의 원화를 보며 맛본 감정의 종류는 조금 다르다. 아무 대비 없이 맞붙은 상대에게 한 방 맞았을 때의 당혹감이라고나 할까.

나라 요시토모는 흔히 일본 ‘네오 팝’의 대표 작가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은 대중 문화를 성공적으로 보듬은 데서 더 나아가 문화 상품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위로 찢어진 눈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악동 같은 소녀는 이미 다양한 캐릭터 상품에 활용된다. 과감한 생략과 변형을 통해 완성된 ‘엽기 소녀’는 포켓몬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처럼 다분히 일본적이면서도 국적 불명의 이중성을 띤다. 그의 특이한 캐릭터들은 이미 세계를 매료했다. 하지만 기껏 엽서 크기로 복제한 사진 속에서 보던 소녀의 얼굴과, 전시장에서 마주친, 아크릴 물감이나 색연필의 질감이 드러나는 캔버스 위의 소녀 얼굴은 느낌부터가 달랐다. 귀엽거나 반항적이거나 악마적이거나 간에 하여튼 가볍기만 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크기도 크기거니와, 농담의 미세한 흐름까지 분명하게 보이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팬시 캐릭터임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라 요시토모는 이 소녀들이 자기의 고독이 낳은 산물이었다고 말했다. 독일 유학 시절 독일어를 못해 고생했는데, 그것이 역으로 자신의 내면과 어린 시절 고향에서 종종 홀로 빈 집을 지키던 그의 기억을 작품에 투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선임학예연구원 태현선씨는 “이 아이들은 어른이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포커페이스로 살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의 속을 비춰 보이는 거울이다”라고 평했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에는 일본과 서양, 순수 미술과 청년 문화, 펑크록 등에서 받은 영향이 뒤섞였다. 그는 1959년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났고, 아이치 현립 예술대학원과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미술 수업을 받았다. 2000년까지 독일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도쿄에서 작업 중이다.

미술대학 수업보다 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펑크록 같은 당대의 하위 문화였다. 드로잉 작품 속에 그가 자주 써넣는 ‘제기랄(Fuck!)’이나 ‘서서히 꺼져 가느니 확 타버리는 게 낫다’는 말들은 섹스 피스톨스나 그린데이, 너바나 같은 펑크록 밴드의 노랫말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반항기는 바로 윗세대인 ‘전공투 세대’(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 세대)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세계평화> <핵무기 반대> 같은 그의 그림은 정치적이라기보다 펑크적이다. 그는 ‘나는 반전이 아니라 비전(非戰)이다. 전쟁하지 말라는 말도 일종의 공격이다’라고 쓴 바 있다. 

정치적이라기보다는 펑크적

 
이번 서울 전시는 나라 요시토모의 첫 한국전이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결산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회화 60점, 조각설치 14점, 드로잉 2백점, 사진 35점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국내에 만화 캐릭터 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 자체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나라 요시토모는 전시 준비 기간에 오사카의 디자인 그룹과 함께 건축 현장에서 쓰고 버린 거푸집을 이용해 <서울 하우스>를 지었고, 그 속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그림 두 점을 그렸다. <서울 하우스>는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자 수많은 작품을 품고 있는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푸집 판자를 이용해 전시장 전체를 미로처럼 꾸몄고, 구석구석에 작품들을 ‘숨겨’ 놓았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비밀 기지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지난 6월15일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나라 요시토모와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재구성한 것이다.

자기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지만, 작품에는 내 체험이 녹아 있다. 내 그림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체계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대중 작가인가, 순수 미술 작가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양쪽 다 해당한다. 나는 순수 미술, 대중 문화, 할리우드 영화, 언더그라운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영감을 흡수한다.

 
캐릭터 상품이 많은데.
처음에는 내가 입으려고 캐릭터 티셔츠를 만들었다. 10대들은 그림의 표면만 보는 것 같고, 주로 20대 이상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데, 작품을 살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제작을 허락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창피하지만, 나는 일본 문화를 잘 모른다. 나는 일본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말 그대로 지역 문화만 경험했다. 교토로 수학여행 갔을 때 ‘아, 이게 일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지의 역사나 문화가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한국이 좋은 이유도 그렇다.

<나라 요시토모 - 내 서랍 깊은 곳에서>전은 서울 태평로 2가 로댕갤러리에서 8월21일까지 열린다. 문의 02-2259-7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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