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키워드] 위험사회, 위험영화공포/<그루지><링2><혈의누><남극일기>
연애론의 어법을 빌리자면, 요즘 티켓 박스 앞에 줄을 선 영화 관객들의 딜레마란 대개 이런 종류의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항상 곁에 있어주고 힘들 때 눈물을 닦아주는 착한 남자는 왜 그리도 지루한 걸까, 전화 한번 먼저 안하고 때로 포악스럽기까지 한 바람둥이 늑대한테는 왜 끌리는 걸까. 곰하고는 못 살아도 나를 필경 망가뜨리고 말 저 여우 같은 여자하고는 왜 같이 살고 싶은 것일까.
최근 국내 극장가는 대척점에 놓인 정서를 ‘인기 상품’ 목록에 나란히 진열하고 있다. 그 하나가 <말아톤> <엄마> <댄서의 순정> 등 이른바 ‘착한 영화’다. 착한 영화가 담고 있는 논리는 애완견 같은 남자나 곰 같은 여자가 그러하듯 단순하고 소박하며 명쾌하다. 대중을 위로하고자 하는 노골적이고도 명백한 몸짓에는 어떤 위장이나 장식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영화적 매력이 반감된 자리는 인간적인 호소와 눈물이 대신한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피곤에 찌든 대중, 위험스럽고 불안에 찬 현실을 살아가는 관객들은 착한 영화가 창조하는 팬터지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 받는다. 착한 영화는 ‘위험 천만한’ 현실을 스크린 바깥으로 추방하거나 고의적으로 망각함으로써 대중을 위무하는 판타지를 창조한다. 이렇게 영화 바깥으로 쫓겨난 현실은 또 하나의 흐름으로 스크린에 귀환한다. 유혈이 낭자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아비규환의 세계, 탐욕이 만들어낸 연옥도, 바로 ‘나쁜 영화’라 부를 만한 잔혹·느와르·공포의 세계이다. <달콤한 인생> <혈의 누> <남극일기> 등은 인간과 사회의 어둡고 악마적인 본성을 그려내는 데 모든 영화적 에너지를 집중한다. 대중은 위악적으로 모사된 현실의 공포와 불안을 밀폐된 극장 안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체험함으로써 새도매저키즘적인 쾌감을 경험하며 ‘진짜 현실’을 잊는다.소박한 위선의 '착한 영화' 매혹적인 위악의 '나쁜 영화'
냉소를 섞어 말하자면 ‘착한 영화’는 소박한 위선이며 ‘나쁜 영화’는 매혹적인 위악이다. 위선과 위악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관객의 주머니를 열고자 하는 경제적 목표일뿐이다. <말아톤> <댄서의 순정> 등 착한 영화의 흥행 기세가 <혈의 누> <남극일기> 등 나쁜 영화의 위용에 한풀 꺾인 가운데, 5월 말 극장가에는 착한 영화의 계보를 잇는 <안녕, 형아>(27일 개봉)와 나쁜 영화의 계보를 따르는 일본발 할리우드산 공포 영화 <그루지>(26일 개봉) <링2>(6월 3일 개봉)가 선을 보인다.
<안녕, 형아>는 다른 모든 착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운명적인 재난과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개인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갑작스런 소아암 판정을 받은 한 아이의 투병을 중심에 놓고 영화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분투와 성장을 그린다. 감독은 그 중에서도 말썽꾸러기 동생(박지빈)과 엄마(배종옥)의 ‘성장 드라마’에 영화의 가장 큰 몫을 배분한다. 막내아들과 엄마는 가장 가까운 핏줄이 당한 갑작스러운 시련 앞에서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들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다. 착한 영화가 쓰는 ‘희망의 언어’는 나쁜 영화에서 ‘공포의 비명’으로 바뀐다. <그루지>에서는 치정과 의심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몰살된 한 가족의 원혼이 서린 집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간다. <링2>에서 여주인공은 저주를 피하고자 죽음의 메시지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남에게 넘기지만 결국은 되돌아와 ‘사후 복수’를 한다. <말아톤>이나 <안녕, 형아>에서 험난한 세상살이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위안이었던 가족은 <그루지> <링2>에서 서로를 위협하고 살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위험사회' 증후군으로 '위험영화' 급증
<혈의 누>의 외딴섬, <남극일기>의 남극, <그루지>의 집은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 <샤이닝>에서 호텔이 그렇듯 인간 탐욕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흡혈귀다. 잔혹 공포 영화 유행은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는 <혈의 누>가 박스오피스 수위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에서는 <그루지> <하우스 오브 왁스> 등 공포 영화가 박스 오피스 1~2위를 잇달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 <쏘> 등 공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올 여름에는 공포 영화 개봉 편수가 예년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포 영화가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라크 전쟁과 테러의 위협 등으로 인한 대중의 공포·불안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지진 수해 등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전쟁, 테러, 방사능, 에이즈, 환경 호르몬 등 예측 불가능한 위협 속에 놓인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규정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할리우드에서 ‘공포 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한국 영화계 역시 공포 장세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초고속
성장, 압축적 근대화로 인해 위험 사회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복합 위험 사회’로 규정되고 있다. 외환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적 재난에 잇단
대형 산불, 그리고 ‘친모살해 후 야산에 유기’ ‘인천 여고생 흡혈 사건’ ‘대전 발발이 연쇄 성폭행 사건’ 따위의 사건을 보면 영화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결국 현실과 지옥이 따로 없는 위험 사회인 한 영사기는 계속 돌아갈 것이다. 착하거나 악독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