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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개그계 파문이 수습되었다. 개그맨들이 다시 웃음을 찾고, 우리도 텔레비전을 보며 편하게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 파문을 복기해 보면 참 희한하다. 애초에 파문은 노예 계약 여부 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네티즌들이 가세하면서 달라졌다. 파문의 성격이 완전히 ‘5월 가정의 달’ 컨셉트로 바뀌었다.
기획사 사장과 개그맨들의 관계가 어느 사이 아버지와 자식, 스승과 제자 관계로 비유되면서, 가정의 달에 충격적으로 일어난 일대 문화적 사건이 되고, 개그계를 넘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키워주었더니 이제 좀 컸다고 아버지에게 대드는 배은망덕한 자식들, 스승을 배반한 몹쓸 제자들에 대한 단죄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네티즌 투표를 보면 전세가 역전되어 사건 초기 궁지에 몰렸던 기획사 쪽이 압도적인 지지표를 받았다. 그런데 계약이 불정공한지의 여부만 판단하면 될 일이 왜 이처럼 가족 윤리 차원으로 번진 것일까. 해당 기획사에 따르면, 개그맨 14명을 어려울 때 데려다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서 헌신적으로 키웠다고 한다. 그들을 온 국민의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고급 승용차 타고 다닐 정도로 돈 벌게 해주었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욕도 하고 구박도 하고 견디기 힘든 모욕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직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 ‘쓰레기’를 ‘인간’으로 만들어 보려는 마음에서 그랬단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마침내 성공했고, 그 순간 아버지를 배반했다는 것이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매도 때리면서 아들을 쥐락펴락하는 아버지, 그리고 이것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라기에 꼼짝 없이 아버지에게 운명을 맡기고 아버지의 노예로 사는 자식들, 이런 ‘아버지-자식’ 관계는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하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일상으로 너무도 흔하게 접한다. 대다수 네티즌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내재된 전통적인 아버지의 이미지를 기획사 사장에게서 본 것이다.아버지 배반하는 자식들 늘어날 것
계약의 합리성 여부만 따지면 될 일을 ‘아버지-자식’ 사이의 윤리적 관계로 치환하는 네티즌들의 발상을 보면서 이제 더욱 분명히 알겠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미친 듯이 온몸을 던지면서 인민군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형의 모습, 기실은 아버지의 모습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왜 그토록 한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왜 박정희가 매번 한국 최고의 지도자로 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전통적
아버지를 향한 한국인들의 끝없는 열망과 향수가 이리도 도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