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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동백 아가씨>가 막 세상에 나올 무렵, 정재은씨(41)는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동백 아가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축복 속에 태어났지만 그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그녀는 외로운 유년을 보내야만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무시로 나오는 유명인이었지만 그녀는 어머니 이미자씨를 자라면서 딱 세 번밖에 보지 못했다. 일곱살 때, 외할머니댁에서 3일동안 함께 지냈던 것을 빼고는, 스치듯이 2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이어받은 그녀 역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 어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미자의 딸 정재은'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어머니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가수 활동까지 잘 풀리지 않자 그녀는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안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에서의 활동은 먼저 자리를 잡은 가수 김연자씨가 도왔다.

일본에서의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일본 최대의 엔카 음반사인 테이치쿠에서 정규 앨범 4장과 싱글 앨범 8장을 발매한 그녀는 2000년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일본 유선음악 대상 골든 리퀘스트 상을 3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병마가 그녀를 덮쳤다.

병마와 싸우며 그녀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했다. 자궁이 굳어지면서 생리를 멈추는 주사를 1년 넘게 맞느라 남성호르몬이 급격히 증가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천혜의 목소리는 간데없고 남자처럼 목소리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여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궁을 들어내고 목소리를 지킨 것이다.   힘겹게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한국에 돌아와 애타는 사모의 정을 담아 음반을 내놓았다. 그녀는 “어머니 옆에 당당히 서고 싶었다. 조금 더 성공해서 들어 오자 하는 생각에, 부끄럽지 않은 딸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행을 도운 것은 일본 팬들이었다. 한류로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씨에게 한국어 음반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어 음반을 제작하며 정씨는 팬들을 위해 <겨울연가>와 <아름다운 날들>의 리메이크 곡을 넣었다. 한국어 음반을 만들자 내친 김에 어머니를 찾기로 했다. 그녀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TV에서 어머니 노래를 처음 불렀다. 감격스러웠다.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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