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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과 멋]

어떤 현상에 대해 한마디로 일반화하기를 좋아한다면, 서양 식습관과 동양(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의 식습관은 서로 상반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은 즐거움(쾌락)의 원칙에 충실한 데 비해, 동양은 신체와 정신 양쪽 건강 상태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이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구미에 들어서는 아시아 음식 열풍으로 인해 이 상반된 두 원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서양 국가들은 전형적인 동양 문화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융화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는 바로 ‘캘리포니아 스시’와 ‘캘리포니아 롤’이다. 

다양한 인종이 서로 섞여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고결한 동양의 요리법 스시가 상륙한 이후, 스시는 캘리포니아 스시로 바뀌어 전세계에 확산 되고 있다. 김밥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캘리포니아 롤 또한 유행의 선두 주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과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 낸 요리다.

이러한 유행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지중해식·일본식·프랑스식 등등의 다양한 요리법을 통해 전개되는 다이어트다. 이전 세대가 즐겼던 기름기 있는 식사를 피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권고하는  다이어트 요리법이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다이어트 요리법을 평정한 것은 유기농, 이른바 웰빙 음식 열풍이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웰빙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다. 웰빙을 자처하는 식당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태원의 한 작은 한국 식당에도 웰빙 메뉴가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고 있는 음식을 본다면 대다수가 유기농과는 거리가 멀다. 세제로 씻어낸 다음 급속 냉동한 수입 새우, 방부제 처리가 된 밀가루로 만든 빵, 전자 양계장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을 우리는 먹고 있다. 식당들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대신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자연을 주제로 인테리어를 꾸민다. 

그 중 가장 희한한 곳은 롯데리아다. 최근 롯데리아는 시대에 걸맞게 웰빙 메뉴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 메뉴 안에는 유기농 재료가 어느 것 하나 쓰이지 않았다. 몸에 안 좋은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새우와 아주 약간의 샐러드 그리고 지중해식의 이국적인 스타일을 가미한 것이 전부다(지중해식 요리를 먹으면 백살까지 장수한다는 소문의 영향인 듯 싶다).

심지어 전자 양계장의 원산지인 KFC도 이러한 웰빙 메뉴를 내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패스트푸드점들이 ‘슬로푸드’라는 새로운 식문화운동을 이끌고 있으니 정말 가관이 따로 없다.

사실, 이 모든 현상은 순수함을 동경하는 현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전혀 순수하지 못한 음식 재료를 통해 다이어트를 하고 신체가 더욱 깨끗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더러운 현대 문명을 씻어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요리법을 모방해 웰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서양인과, 그 서양인을 모방해 고결한 원래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라이프 스타일의 일면만 따라 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모습은 보기에 처량하다.  서양 사회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웰빙’ 열풍은 동양의 고전적인 가치에서 멀어져 있다. 도교에서처럼 심신의 균형을 추구한다든가,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좀더 아름다워지고, 좀더 날씬해지고, 좀더 ‘몸짱’이 되기 위한 열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집착, 거기에서 지금의 웰빙 열풍은 머물러 있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동경은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헬스클럽에서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고통을 받고, 거짓 유기농 식당에서 유쾌하지 못한 식사를 하는 것만큼 억압된 즐거움은 없다. 우리는 과거 루이 14세의 향연이나, 도교 철학의 무위자연으로부터 아주 멀리 와 있다.

우리는 모든 감각의 최절정의 쾌락도, 고결한 심신의 균형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집착과  자기 도취의 자위적인 쾌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밥상 위의 자위, 이것이 오늘날 웰빙 열풍의 현실이다.

번역 : 한원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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