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연출 : 시드니 폴락 /출연 : 숀 펜·니콜 키드먼
유엔에서 일하는 통역사 실비아(니콜 키드먼)는 본회의장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대화를 듣게 된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소국 만토바에서 사용하는 언어 쿠를어를 사용하여, 현 대통령인 주와니를 암살할 음모를
의논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경찰에 신고하고,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는 며칠 뒤 유엔에서 연설하는 주와니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에
들어간다.
한때 민주투사였지만, 대통령이 되어 폭정을 저지르는 주와니. 그의 정적인 쿠만쿠만은 뉴욕에 망명 중이고, 졸라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수사를 진행하던 토빈 켈러는 실비아의 고향이 만토바이고, 그의 가족은 주와니 일당이 설치한 지뢰에 희생당했고, 한때 총을 들고 반군에
참여하기도 했음을 알게 된다. 과연 암살 음모는 사실일까? 실비아의 정보는 정확한 것일까?
<인터프리터>는 매우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지닌 스릴러 영화다. 단순히 범인이 있고, 사건이 벌어지면 그 단서를 추적해 가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어떤 정보가
주어져도 토빈 켈러는 물론 관객도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전제부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때 주와니는 만토바 민중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만토바는 과거의 독재자들과 다름없는 학살을 자행한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때 실비아와 그녀의 가족은 주와니를 존경했고,
그의 찬란한 민주화 투쟁 과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배신했다.
어떻게 보면, 암살이라는 행동이 오히려
정당할 수도 있다. 켈러는 한때 반군이었던 실비아를 의심한다. 슬쩍 암살 음모를 흘리고, 실비아가 그를 죽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비아는 말한다. 한때 총을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단지 돈 몇푼 때문에 실비아를 살해하려던 흑인 소년을 죽인 후, 평화적인 수단을 택했다.
유엔에 온 이유도 그것이다. <인터프리터>는 폭력과 평화라는, 인간이 악마와 싸울 때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무기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린 영화다.
통역사는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해주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공통된 이해를 끌어낸다. 유엔이라는 곳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비아는
폭력을 버리고 평화의 길을 선택했지만, 다시 폭력을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심한다. 평화는 너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죽음은 어쩌란 말인가. <야망의 함정> <아웃 오브 아프리카> <투씨> <코드네임
콘돌> <추억>을 만들었던 시드니 폴락 감독은 이 어려운 질문을 정공법으로 풀어간다. 휴머니즘이라는 원칙을 굳건하게 견지하며,
마지막까지 할말을 한다.
그 덕에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숀 펜과 니콜 키드먼의 탁월한 연기가 긴장감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그들의 교류가 <인터프리터>를 촉촉하게 적셔준다. 2주일 전 사고로 아내를 잃은 켈러와 오빠의 죽음을 전해들은 실비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지만,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해 간다. 그렇다고 배신자인 주와니까지 용서하기는 힘들지만, 대신 그들은
역사와 현실을 받아들인다.
만토바의 원주민들이 사용한다는 강물 재판처럼 하늘의 법칙에 그들은 심판을 맡기고, 그 결과를 인정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렇게 <인터프리터>는 고전적이고, 정직한 영화다.